구내 식당이 있는 회사의 여직원들은 점심 식사 시간이면 대체로 기분이 상한다고 합니다. 구내 식당에서는 밥을 자기가 원하는 만큼 푸고 나면 반찬을 나누어 줍니다.생선일 경우 대가리나 말라 비틀어진 꼬리 부분, 제육 볶음이라면 제육은 빼고 야채 부분만, 김이 들어간 계란말이라면 김이 빠진 귀퉁이….
왜 내 식판은 이렇게 초라할까.
많은 여성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배식자가 아줌마들이라는 점입니다.
함께 간 남자 동료들의 식판에는 생선 가운데 토막과 김이 들어간 계란말이, 여자들보다 훨씬 많은 양의 김이 올라갑니다.
이런 불평을 하려 하면 남자 동료들은 “왜 맨날 먹는 데 목숨을 거느냐” 며 가볍게 핀잔을 하거나 “남자가 밥을 많이 먹으니까 반찬이 더 많은 것 아니냐”고 아줌마를 적극 ‘옹호’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똑 같은 식권을 내고 밥을 먹으면서 공연히 얻어먹는 기분이 드는 불쾌한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집에서는 밥을 푸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 남동생, 언니와 제밥을 퍼준 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남은 밥을 푸셨습니다.
닭고기를 먹을 때도 양쪽 다리는 아버지와 아들 차지였고, 과일도 잘 생긴 것은 아버지와 아들 몫이었지요.
다른 부분에서는 결코 아들과 딸을 차별하지 않으셨지만, 유독 ‘먹는 것’에는 그런 룰이 있었습니다. 누룽지를 먹으면 밖에 나가서 할 소리를 제대로 못한다, 뭐 이런 설명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말짱히 성한 과일만 있는 과일 바구니를 보더니 아이가 “엄마 먹을 상한 과일 없네”라고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전히 ‘엄마식으로 먹기’가 우리 사회 구조적으로 ‘강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줌마 저도 가운데 토막으로 주세요.” 이렇게 한 번 말해볼 생각입니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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