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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피도 눈물도 없이'…의기투합 두여인 "한탕만 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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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피도 눈물도 없이'…의기투합 두여인 "한탕만 하자구"

입력
2002.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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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은 류승완 감독이었다.쿠엔틴 타란티노가 ‘헤모글로빈의 시인’이고 가이 리치가 영국에서 할리우드로 수출한 악동이라면, 여태까지의 류승완은 그들을 추종하는 충무로의 할리우드 키드였다.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이’를 통해 그는 할리우드적이되, 결코 ‘키드’는 아니라는 자기 증명을 해 보였다. 그들보다 ‘독하고 또 독한’ 독특한 액션 연출력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미니 스커트에 어깨가 드러나는 옷만 입는 라운드 걸 출신의 수진(별명 선글라스ㆍ전도연)과 노름꾼 남편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살아가는 택시기사 경선(별명 가죽잠바ㆍ이혜영).

두 여자가 폐선박의 투견장에서 한 건을 올리기로 의기투합해 판돈을 담은 돈가방을 갈취하지만 여자들이 상대하기에 주먹 쓰는 남자들은 만만치가 않다.

애초 ‘여성 액션’이라는 마케팅 포인트로 이혜영과 전도연이 ‘거친’ 모습을 보였고, 실제로 이혜영은 ‘조폭마누라’의 신은경 액션이 ‘발레’로 보일 정도로 격한 장면을 소화했다.

칠성파의 졸개인늙은 깡패 백골(김영인)과 불곰(백찬기)이 이혜영이 좁은 아파트에서 벌이는 육박전은 틀에 박힌 여자들의 ‘앙탈’ 수준을 크게 웃도는 것이다.

얼굴에서 묻어나는 거친 인생의 역정이 정작 육두 문자를 섞은 말투에서는 한풀 꺾여 심지어 고상한 기운마저 감도는 것은 못내 아쉽다.

두 여자 주인공의 심리적인 변화와 ‘자매애’에 이르는 과정이 견고하지 못한 점은 감독의 숙제로 남았다. 타란티노식 ‘마지막 뒤집기’가 없는 것도 영화의 감칠 맛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류승완 감독은 정작 남성의 캐릭터를 구축하거나 남성 액션을 새롭게 하는데서 기발한 재주를 보인다.

영화 속 최대 악당인 불독의 이미지는 매우 강력하다. 월드컵 티셔츠나 아디다스 운동복만 입고 여자는 개 패듯이 때려도 트로피만은 애지중지하는 권투선수 출신의 깡패 독불(정재영).

동거녀인 전도연을 때릴 때, 경선과 처음 부닥쳤을 때, 그의 액션은 가차없다.

특히 사채업자인 KGB(신구)의 부하 침묵맨(정두홍 무술감독)과 투견장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10분 간의 긴 싸움 장면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서 형사와 범인의 길고 긴 주먹질 장면보다 더 인상적이다.

더욱이 상업영화 데뷔작에서 이처럼 긴 시간의 액션을 보인다는것 자체가 감독의 ‘강단’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1,300컷(통상 700컷내외)에 달하는 엄청나게 많은 장면이 쏟아지는 것을 지켜보려면 꽤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다. 마치 초강력 헤비메탈을 듣는 것처럼.

칠성파의 칠성(백일섭), 형사 마빡(이영후) 등 과거의 TV 액션 배우들에게 세월의 더께를 입혀 묘한 아우라를 가진 캐릭터로 그려낸 것은 기가 막히다.

웨이터 채민수를 연기한 류승범의 캐릭터가 오히려 싱거워 보였을 정도. 조연들을 운용하는 능력은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과 비견될 만하다.

봉준호(형사), 오승욱(여관 주인), 김홍준(호텔대표)감독이 카메오로 출연했다.

B급 영화의 알찬 수확 중의 하나였던 류승완 감독. 제작비 26억 원의 상업영화를 액션 장르, 그 자체에 충실한 맛으로 요리해냈다.

영화 곳곳에서 묻어나는 그의 스타일이 과연 주류 영화 관객의 감성에 얼마나 호소할지 관심거리다.3 월1일 개봉. 18세 이상.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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