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어느 은행지점에 스즈키씨가 찾아와 지하의 대여금고를 세냈다. 그리고 현금을 이 금고에 넣었다. 이튿날부터 스즈키씨는 돈이 필요할 때마다 은행을 찾아와 금고에서 얼마씩을 꺼내갔다.이를 보다 못한 은행지점장이 하루는 “스즈키 선생님, 은행계좌를 트시지요” 라고 충고했다. 그러자 스즈키씨가 대답했다.
“당신 은행은 예금에 대해 어떤 보증을 해줄 수 있나요. 나는 이게 더 좋은데….”
■ 이 에피소드는 실제 상황이 아니다. 최근 시사주간지 타임(아시아판)이 일본의 경제위기를 다룬 기사에 소개한 일본인들의 농담 한 토막이다.
은행에 예금한 돈이 두 배로 불어나려면 1000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로 금리는 0%에 가까운데 부실채권으로 은행은 언제 망할지 모르는 일본의 금융위기를 상징하는 농담이다.
미국마저 일본의 평생고용과 교육이 성장의 견인차라며 부러워하던 세계 최고의 공업생산국이 위기를 넘어 몰락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국가의 운명도 10년을 장담할 수 없는 세상이다.
■ 아직도 일본은 소비제품을 만드는 기술에서 가장 앞선 나라이자, 부동의 제2경제 대국이다.
그러나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금융위기가 덮치고, 세계화의 소용돌이속에 공장이중국으로 이전하고 실업자는 40년이래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인상파 그림 한 점에 수 백억원씩 주고 사들이고 미국의 부동산을 닥치는 대로 매입하던 일본의 기세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 ‘강대국의 흥망성쇄’를 펴내 유명해진 역사학자 폴 케네디도 불과 9년 전 일본을 21세기에 가장 잘 적응할 태세를 갖춘 나라로 점쳤다.
세계화와 기술발전이 지배할 21세기에 가장 준비를 잘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 19세기 세계를 주름잡던 영국이 몰락한 이유가 시대에 맞는 제도와 투자, 교육으로 사회를 재구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근거에서 유추한 것이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운명도 경제학자나 역사학자의 과거 잣대로 점을 칠 수는 없는가 보다. 미워하며 본받는 이웃 일본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 것인지 정말 궁금해진다.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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