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영국은 그야말로 거대 제국이다. 본토의 수백 배에 달하는 해외 영토에 세계 인구의 4분의 1이 영국 깃발 아래 놓여 있다.‘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세계의 경제는 런던의 ‘시티’, 세계의 역학 구도는 오대양의 영국해군 함포에서 나왔다.
당시 영국 해군력은 2, 3위 국가를 합친 규모였으니 ‘슈퍼 파워’라는 말이 전혀 손색이 없다. 1887년 빅토리아 여왕 재위 50주년 기념식은 대영제국의 영광을 세계 만방에 고하는 지구적 이벤트였다.
■ 그런 대영제국의 낙조(落照) 드라마는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가장 흥미로운 역사의 연구 주제다.
세계 제조업과 무역고의 4분의 1을 차지하던 초강대국이 불과 수 십년만에 맥없이 쇠락한 게참으로 수수께끼 같은 일인 것이다.
양차 세계대전의 상처 때문이 아니다. 영국의 병세는 그 이전부터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20세기로 들어서는 문턱에서 영국은 이미 미국 독일에 밀려나고 있었다. 학자들은 이에 대해 저마다 ‘해몽’을 갖고 있다.
■ 요즘 세기의 석학으로 불리는 미국의 피터 드러커 박사도 물론 빠질 수가 없다. 그의 해석은 정치적인 것도, 경제적인 것도 아니고 사회적이다.
대영제국의 쇠퇴는 한마디로 ‘기술자 천시(賤視)’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으로 국력을 일으켰음에도 정작 기술자는 절대로 ‘신사’의 반열에 끼어주지 않던 당시 사회 기풍이 영국의 경쟁력을 갉아먹은 독소였다.
기술자를 얼마나 하찮게 보았으면 대영제국의 본토에 변변한 기술학교가 한 개도 없었을까.
■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대학 수능 자연계 응시자가 해마다 줄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서울대 이공계 합격자 등록 미달’이라는 미증유의 사태까지 벌어졌으니 말이다.
청소년의 직업 선호에서도 ‘과학기술인’은 후순위로 밀려나고 있다. 소위 ‘사’자 직업 학과를 위해 명문대 합격을 포기하는 희한한 일도 보인다.
지식사회라고 다들 떠들어 대지만 정작 상아탑에서는 역조(逆潮)가 빚어지고 있다. 기술자 박대의 사회풍조 때문이 아니라면 입시제도 하나 제대로 못 세우는 정부정책이 그 주범이다.
송태권 논설의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