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농산물분야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사실상 포기키로 함에 따라 국내 농산물 시장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농업부문에서 개도국 지위를 포기할 경우 농산물 시장 개방 폭과 속도가 훨씬 빨라지기 때문이다. 또 정부의 협상전략 수정은 2004년부터 시작되는 쌀 협상에서 시장개방(관세화)을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돼 농민들의 격렬한 반발이 예상된다.
▼왜 포기하나
정부가 UR 협상 때 관철한 ‘개도국 지위’를 포기키로 한 것은 ‘개도국 지위’를 고집할 경우 ‘명분’과 ‘실리’ 모두 잃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은 국제적으로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기에는 너무 ‘부자 나라’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현재 농산물 분야 개도국은 케냐, 캄보디아 등 아프리카, 중남미,동남아시아 국가로 구성됐으며, 30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한국 만이 유일하다.
결국 정부의 전략 수정은 객관적으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기 어렵고, ‘개도국 지위’를 얻어내도 상품이나 서비스, 투자부문 등에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면 과감히 농업부문을 양보하고 경쟁력 있는 분야에서 실리를 얻어내자는 것으로 해석된다.
▼무엇이 달라지나
UR협상 당시 개도국들은 농산물을 수입할 때 매기는 관세율의 감축 폭을 10년의 이행기간 동안 평균 24%씩 낮춰야 했다.
이에 비해 선진국들은 이행기간은 6년으로, 개도국에 비해 4년이나 짧으면서도 36%의 강도 높은 감축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보조금 부분에서도 선진국은 6년간 20%의 감축을 실시한 반면 개도국은 10년간 13.3%의 보조금만 줄이면 됐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선진국 지위에서 농업부문을 개방할 경우 마늘, 고추, 참깨, 조제분유 등 국내 시장 보호를 위해 고율관세가 매겨졌던 품목과 쌀과 보리, 콩 등 정부 수매사업이 이뤄졌던 품목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건은 쌀 시장 개방
정부의 ‘개도국 지위’ 포기는 쌀 협상에서 관세화 유예를 지켜내겠다는 당초 협상 전략에 대폭적인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관세화 유예론’의 논리적 근거가 우리 나라가 농업부문은 경쟁력 없는 개도국이므로, 2004년 이후에도 쌀 시장을 개방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농림부는 ‘선진국 지위’로의 전환이 쌀 시장개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배종호 식량정책과장은 “선진국 지위였던 일본과 이스라엘도 쌀 관세화 유예 조치를 받았다”면서 “쌀이 갖고 있는 식량안보와 환경문제 등 비교역적 기능을 강조할 경우 관세화를 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병주기자
bjkim@hk.co.kr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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