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장애란?지능은 정상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읽기나 듣기, 쓰기, 셈하기 등 학습에 가장 기본이 되는 학업기술 습득이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전문용어로는 ‘learning disorder’라고 한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들은 이런 학습장애를 지능이 낮은 아이들에게 많이 발생하는 ‘학습 지진’이나, 우울증 및 불안 등 정서적인 문제로 학습이 어려운 ‘학습부진’과 구별한다.
▼어린이의 5% 정도가 학습장애
아인슈타인, 에디슨, 안데르센, 예이츠, 디즈니, 톰 크루즈 등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하며 두각을 드러냈을 것 같은 유명 인사들이다. 하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어린 시절 ‘학습장애’로 인해 지진아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주부 김모(35)씨는 얼마 전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을 데리고 소아정신과를 찾았다가 뜻하지 않은 얘기를 들었다. 그저 학습에 관심이 없고 주의가 산만한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학습장애’ 진단을 받은 것이다.
서울대병원 학습증진클리닉 신성웅 전문의는 “보통 수준의 지능을 가진 어린이가 읽기와 쓰기, 산수 과목에서 자신의 지능이나 학년에 비해 2년 정도 뒤처지는 경우 학습장애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아동이생각보다 많아 전체 어린이의 5% 정도에 이르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습장애 아동들이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있다”고 덧붙였다.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아동 가운데는 읽기 장애를 겪는 경우가 60~80%로 가장 많고, 셈을 잘 하지 못하는 장애가 1~5% 정도다.
특히 남자 아이의 학습장애 발생 비율이 여자 아이보다 3~4배 높다. 교육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초중고교생가운데 학습장애를 겪고 있는 학생은 1만 1,460명에 이른다.
▼원인은 두뇌의 이상
학습장애는 게으르고 성의가 없다거나 지능 발달이 늦기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학습장애는 대부분 두뇌 발달의 미세한 이상으로 인해 발생한다.
이런 두뇌 발달의 이상은 태아기나 영유아기 동안 뇌 발달에 영향을 주는 여러 환경 인자와 유전자의영향으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들다.
학습장애는 두뇌의 정보처리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읽기 장애는 문자라는 부호를 해독해 거기서 소리를 뽑아내는 과정에 장애가 발생한 경우다.
읽기 장애 아동 가운데에는 앞뒤 글자를 바꿔 읽는다든지 ‘ㄱ’과 ‘ㄴ’ 을 구분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알 수 있나?
학습장애 여부는 3~4세만 되어도 어느 정도 진단이 가능하다. 대개 만 3세가 되면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는데, 말의 순서를 여러 번 교정해 주어도 자주 틀리거나 물건의 개수를 제대로 세지 못하는 등 수 개념에 문제가 발견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글을 익히고 받아쓰기를 배우면서 확실히 드러난다. 글자를 익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ㄱ’과 ‘ㄴ’, ‘ㅁ’과 ‘ㅂ’을 혼동하는 등 비슷한 글자를 뒤바꾸어 쓰는 경우도 있다.
또한 구구단은 외우지만 ‘사과 두 개와 배 세 개를 합치면 모두 몇 개인가’ 하는 간단한 문제를 틀리기도 한다.
학습장애의 가장 흔한 증상은 글을 읽고도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글 자체를 읽지 못하지만, 증상이 가벼운 경우에는 내용을 단편적으로 파악하면서도 전체적인 의미는 알지 못한다.
한 단어를 반복해서 읽거나, 다음 줄로 넘어가야 하는데 다시 그 줄을 읽을 때도 있다. 맞춤법을 자주 틀리거나 일기나 독후감 등 자신의 생각을 글로 조리있게 표현하지 못한다.
위, 아래, 왼쪽,오른쪽과 같은 방향 감각을 혼동하기도 한다. 글씨를 쓰는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거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악필인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하며 머리를 쓰는 일을 피하는 경우도 학습장애를 의심해 봐야 한다. 학습장애를 겪는 7~8세의 아동이 2~3세의 어린 아동에게서 볼수 있는 유치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학습장애는 그 자체보다 오히려 그 때문에 생기는 2차적인 결과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한양대병원 정신과안동현 교수는 “학습장애 아동은 아무리 노력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 자신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겪게 돼 종종 심한 우울증 증상을 보이거나 심지어는 수면 장애 등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등교 공포증을 겪기도 하고 일부 아동은 눈을 깜박거리거나 안면근육을 실룩거리고, 코나 입 모양을 괴상하게 움직이는 틱(tic) 장애를 겪기도 한다. 학습장애를 가진아동의 25~30%는 주의력 결핍 등을 동시에 나타내기도 한다.
▼치료방법은?
학습장애는 일반적인 교육방법으로는 교정할 수 없다. 무조건 반복학습만 시키면 ‘2 더하기 3은?’이라는 질문에‘5’라는 답을 암기해 답변할 수는 있지만 ‘3 더하기 2가 얼마냐?’고 물으면 답하지 못하기 때문에 무조건 반복 학습을 강요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습장애가 의심된다면 찰흙 모형 등을 이용해 글자나 숫자를 만지고 조작할 수 있게 해주고, 잘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나 개념은 실제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헬렌 켈러에게 차갑다는 단어를 설명하기 위해 우물물을 만지게 한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러나 무엇보다 조기에 발견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홍성도교수는 “주의산만함과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아동을 모두 학습장애아라고 볼 수는 없으며 조심스러운 감별을 통해서만 정확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학습장애가 있는 것으로 의심스러우면 초등학교 3~4년을 넘기기 전에 진단을 받아야 치료가 가능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학습장애를 학습부진과 동일시해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강남성모병원 정신과 이수정 교수는 “미국은 1975년 모든 장애 아동을 위한 교육법 등에 근거해 초등학교 2학년과 5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학업 성취도를 검사해 학습장애학생들에게는 전문적인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학교별로 특수교사를 배치해 학습장애 아동을 위한 차등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습장애 진단
1. ‘치기’와 ‘시기’, ‘개나리’와‘미나리’ 등 모음이나 자음 끝말의 발음이 비슷하면 음을 구별하지 못한다.
2. 말로 지시하는 것을 잘 따라 하지 못한다.
3. 짧은 시나 노래의 단어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4. 단어 카드에서 ‘집’을 읽지만 문장에서는 읽지 못하는 등 알고 있는 것을 상황이 바뀌면 헷갈려 한다.
5. 말할 때 발음을 빠뜨리거나 없는 발음을 첨가한다. 또는 다른 발음으로 바꾸거나 순서를 바꿔 말한다.
6. 음이나 단어를 완전히 틀리게 말하거나 잘못 발음한다.
7. 읽을 때 단어나 줄, 문장을 빼먹고 읽는다.
8. 자기 학년 수준의 단어를 알지 못한다.
9. 단어를 쓰거나 읽을 때 단어를 빠뜨리고 읽거나 없는 단어나 글자를 추가한다. 혹은 다른 글자로 잘못 읽거나 거꾸로 읽는다.
10. 비슷하게 생긴 글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11. 읽어준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스스로 소리내지 않고 읽을 때에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12. 단어들이나 문장 사이에 간격을 적절히 띄어 쓰지 못한다.
13. 글자나 숫자를 거꾸로 쓴다.
14. 받아쓰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
15. 더하기를 하다가 빼기를 하면 못한다.
16. +, X 등의 계산부호를 혼동한다.
17. 세로식 문제에서 오른쪽에서부터 왼쪽으로 풀지 못하고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문제를 푼다.
*서울대병원 학습증진클리닉 소아정신과 신민섭 교수가 개발한 ‘초등학생 학습장애 평가척도’. 10개 이상에 해당하면 전문의의 상담을 받는 게 좋다.
■서울대 학습증진클리닉 학습장애아동 지도법
학습장애가 가볍거나 학습장애가 의심되는 아이에게는 각별한 학습 지도가 필요하다. 서울대병원 학습증진클리닉에서 제안하는 학습장애아를 위한 지도법은 다음과 같다.
(1) 아이의 학습 습득 속도를 항상 잘 살펴야 한다. 학습장애가 있는 아동들은 항상 일정한 속도로 습득하는게 아니므로 학습습득 속도가 느린 날에는 영어 및 우리 말 단어를 반복해 쓰는 정도의 단순한 과제를 주는 게 좋다.
(2) 학습장애 아동은 어느 수준까지 잘 습득하다가 갑자기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잊어버리거나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에는 야단을 치거나 윽박지르지 말고, 잠시 쉬었다가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게 좋다.
(3) 공부는 시작하기 전에 계획을 세우는 게 좋다. 공부 시간은 아침에 일어나서 두 세 시간 뒤에나 오후 3~4시로 고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공부하게 하고, 처음 시작할 때 ‘오늘은 무엇을 배운다’는 목표를 명확히 제시해 주어야 한다.
(4) 만일 하루에 두세 가지 과목을 공부한다면 과목들이 중첩되지 않게 해야 한다. 즉 수학을 공부한 다음에는 과학보다는 사회를, 국어를 공부한 다음에는 수학을 공부하는 방식이다.
(5) 부모가 스스로 자리에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인터넷이나 백과사전을 찾아 알아가는 과정을 아이에게 직접 가르쳐주어야 한다.
(6) 공부방을 정돈해 준다. 책상 위에 물건을 산만하게 늘어놓지 말고, 전체 조명과 부분 조명을 잘 배합해 집안 전체를 공부하는 분위기로 만들어준다.
(7) 컴퓨터나 비디오는 아이에게 좋은 학습 도구이기도 하지만 과하면 독이 되기도 한다. 일정한 내용을 익히면 컴퓨터나 비디오를 얼마만큼 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미리 하는 게 좋다.
(8) 무조건 반복하는 학습은 학습장애 개선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복하기보다는 예를 들어주든지 아니면 일단 그 주제를 피하고 아이가 인식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9) 일상 생활에서 무언가 깨달아가며 머리를 쓰는 작업이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말 잇기 게임이나 보드 게임, 기억력 게임 등을 같이 하는 게 좋다.
(10) 공기 놀이, 줄넘기 등 섬세한 운동을 자주 하도록 권한다. 이런 놀이는 운동 신경을 발달시켜줄 뿐아니라 집중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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