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준씨의 극적인 재탈북소식이 알려진 13일 밤. 기자는 서울 중랑구 유씨의 모친 안정숙씨 집을 부랴부랴 찾았다. 이에 앞서 데스크로부터 전해 들은 유씨의 탈북기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를 연상케했다.달리는 취재 차량 안에서 유씨의 탈출 과정을 되짚던 기자는 문득 ‘이게 아닌데…’ 하는 3년차 사건기자 특유의 직업병이 발동했다. 보위부 탈출 과정과 석연치 않은 중국 입국등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궁금증을 풀어줄 유씨는 집에 없었다. 신변보호를 담당하는 경찰 관계자가 오기도 전에 모 신문사가 유씨를 빼돌린 채 단독 인터뷰를 하고 있었기 때문.
다음날 아침. 예상대로 주요신문들은 유씨의 재탈북 드라마를 큼지막하게 다뤘다. ‘5m 담장 위 전기철조망 옷으로 틈 벌린 후 탈출…(14일자 A신문)’ 등 기사 제목도 액션영화의 광고문구처럼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로부터 10여시간이 지난 14일 오후. 재탈북 드라마는 수사기관이 “유씨가 쓴 소설”이라는 내용의 해명자료를 발표하면서 ‘오보’로 확인되고 만다.
이 과정에 ‘가담’했던 기자는 언론의 ‘선정주의’에 자괴감을 감추기 어렵다. 좀 더 냉철하게 따져봤더라면 ‘거짓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씨가 밝힌 ‘시속 100㎞로 달리는 북한 기차(북한 기차는 시속 50㎞를 넘지 못함)’ ‘객차 위 고압선 아래 숨어 길주 행(行)’ 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신문은 14일 밤에 서울시내에 뿌려진 15일자 초판까지 특종을 자축하다 시내판에서 기사를 빼는 촌극까지 빚었다.
‘유태준 미스터리’는 언론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고찬유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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