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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탈북과 '퍼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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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탈북과 '퍼주기'

입력
2002.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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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탈북자의 드라마틱한 재탈북 스토리가 거짓으로 드러난 사건은 남북관계의 모순된 현실을 상징하는 듯 하다. 특히 북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중적 인식과 위선적 자세를 통렬하게 고발한 에피소드다.어리숭해야 할 탈북 청년이 닳아 빠진 남한 사회를 속이려 한 것이 맹랑하지만, 그에게 그런 거짓말을 미덕으로 가르친 것은 바로 우리의 거짓된 모습이다.

그가 세상 물정 몰랐던 게 아니라, 우리가 우스꽝스런 제 모습을 깨닫지 못할 뿐이다.

■ 해프닝에 묻어나는 공작 흔적은 무시하자. 드러난 겉만 볼 때 압권은 그 어머니가 철통 같은 보위부 감옥을 빠삐용 처럼 탈출했노라고 거짓말 시킨 동기다.

김정일 위원장이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은 조국도 사랑한다’는 명언이 담긴 석방 친서를 내려보낸 사실을 그대로 말하면, 그의 이미지만 높이고 특혜 받은 아들의 입장은 어색할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남한 생활 몇 년 사이 이사회의 생리와 처신술을 터득한 여인의 지혜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 이 탈북자는 지난해 재입북했다가 처형됐다는 보도로 관심을 끌었다. 굶주린 북한 동포에 인색하면서, 탈북 동포에는 동정심이 유별난 보수 언론은 우리 국민을 처형한 북한과 방관한 정부를 함께 비난하는데 열 올렸다.

북한이 남북을 멋대로 오간 이를 32년 노역형에 처했다가 평양 가까운 정미소에서 일하도록 파격적 관용을 베푼 것은 이런 남쪽의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를 방송에 내보낸 것이 남쪽 여론을 의식했음을 일러준다.

■ 언론이 황당한 재탈북 스토리에 솔깃한 것은 인권 상황 등 북한 체제의 악덕을 부각시키는데 집착하는 낡은 습관 탓이다.

체제경쟁이 끝난 지 오랜 마당에 북한 때리기에 매달리고 대북 퍼주기를 비난하는 것은 진정 동포를 위하는 마음이 아니다. 통일 비용에 질겁한 것처럼 그들을 격리하려는 위선적 이기심에 불과하다.

과거 서독은 한껏 동독에 퍼주면서도 소문내지 않고 반체제 이주 희망자를 돈 주고 데려왔다.

이제 탈북자회견 따위는 없애고, 북에 남은 동포를 조용히 돕는 게 민족적 양심을 따르는 길이라 믿는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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