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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윌리엄 포크너‘8월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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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윌리엄 포크너‘8월의 빛’

입력
2002.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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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초여름에 윌리엄 포크너의 ‘8월의 빛’을 읽었다. 당시 나는 입대 날짜를 받아 놓고 휴학한 상태였다. 나처럼 게으른 청춘이 하염없이 남아도는 그 뜻하지 않은 여가를 뜻깊게 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더위가 습한 기운과 함께 몰려오던 계절에, 나는 알 수 없는 답답함에 휩싸인 채 이 소설을 읽어내려 갔다. 읽기가 매우 까다로운 소설이었다. 번역투의 문장이 비비꼬이고 또 꼬여 몇 번을 읽어야 겨우 의미가 들어왔다.

그러나 정작 이 소설을 까다롭게 만드는 건 형식이었다. ‘시간의 사용’이 그 어려움의 중심에 있었다.

미래로 가고 있는 하나의 시간이 있고, 나머지 시간들이 미래로 가고 있는 그 시간에서 가지를 치고는 과거로 달려간다.

그랬다가 다시 미래를 향해 거슬러 오는데, 끝내 미래로 가지 못하고 기준이 되는 그 ‘하나의 시간’에 합류한다. 그 시간들이 어찌나 복잡하고도 정교하게 중첩되는지!

그 복잡 미묘한 시간의 구조 속에서, 미국 남부의 흑인과 백인이 서로 얽히고 설킨다. 가혹한 운명들. 그 운명의 정체는, ‘너와 나는 하느님의 목적과 복수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대목에서 잔인하게 밝혀진다.

포크너의 펜은 정말 너무하다. 그는 흑인이라고 쉽게 동정하지 않고 자기가 백인이라고 백인들을 이유 없이 감싸지도 않는다. 그저 불쌍한 처지와 죄지음과 그 뼈아픈 결과들을 에누리 없는 언어로 파헤쳐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진실을 담고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미국 남부에서 발생한 흑인 음악 형식인 블루스를 즐겨 듣는다.

이 소설은 가슴을 저미는 블루스의 마력 뒤편에 어떤 삶의 구조가 있는지, 그 어떤 음악이론 책보다도 적나라하게 밝혀준다. 명철한 작가의 맨눈이라는 건 정말 무서운 것이다.

성기완 시인·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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