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가안보국 NSA/제임스 뱀포드 지음/곽미경, 박수미 옮김/서울문화사 발행/전2권 각권1만 원“포커 게임에서 속임수를 쓰듯, 이들은 적의 패를 훔쳐보았다.”
미 국방부 소속 국가안전보장국(NSAㆍNational SecurityAgency). 배우자에게조차 자신이 하는 일을 밝히지 못한 채 살고 있는 현역 군인 및 민간인 3만 8,000여 명으로 구성된 세계 최대, 최강의 비밀 첩보기관.
조직 규모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두 배에 달하며, 예산 규모로 볼 때 ‘포천’ 지가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의 상위 10%에 속할 만한 거대 집단.
세계 최고의 고성능 컴퓨터와 최고의 수학자 및 언어전문가들이 펨토 초 단위(1천조분의 1초)로 시간을 잘라서 살고 있는 곳.
NSA는 트루만 대통령 당시인 1952년 창설됐지만 이후 30여년 간 그 존재자체가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NSA는 그래서 “그런 기관은 없다(No Such Agency)” 혹은 “아무 말도 묻지 마라(Not SayAnything)”의 약자로 불리기도 했다.
미 ABC방송 프로듀서 출신인제임스 뱀포드가 지난해 출간한 ‘미 국가안보국 NSA’는 이 기관의 실체를 최초로, 종합적으로 알린 리포트이다.
뱀포드가 기밀 해제된 미국 정부문서와 NSA 전ㆍ현직 관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낸 NSA의 정체는, 한 마디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사의 이면을 움직여 온 미국의 국가권력’이라는 것이다.
책의 원제는 ‘비밀의 몸통(Body of Secrets)’이다.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의 임무, 즉 통신 감청을통한 정보수집 및 암호 해독으로 NSA는 냉전시대 미국의 적대 국가들은 물론, 우방국의 동향까지도 낱낱이 감시하며 피아의 구분 없는 첩보전을 벌여왔다.
저자가 파헤쳐 보여주는 NSA의 공작에는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망라돼 있다.
1960년 소련 영공에서 군사기지를 염탐하던 U-2기가 대공 미사일에 격추된 사건으로 미국의 고공첩보활동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이후, 쿠바 미사일 사건과 베트남전 개입은 물론, 다이애나 영국 전 왕세자비의 죽음에서 교황과 테레사 수녀의 통화내용까지 도청했다는 의혹이 하나하나 제기된다.
뱀포드가 극비 문서를 통해 밝혀낸 쿠바 미사일 사건 당시의 미 군부(합동참모본부)의 공작 계획은 가공할 만하다.
이른바 ‘노스 우즈 작전’이라는 암호명으로 통하던 이 계획에는 ‘쿠바를 탈출한 난민들이 탄 배를 공해상에서 가라앉히며, 워싱턴DC와 마이애미 및 기타 지역에서 폭력 테러의 물결을 불러일으켜… 위장 전술로 미국이 자국에 대한 공격을 비밀리에 감행… 전쟁 도발을 정당화’하는 제안이 포함되었다고 그는 폭로한다.
한 걸음 나아가 저자는 “미국과 베트남 간의 오랜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1964년의 통킹만 사건은 어쩌면 미국의 전쟁개입에 대한 의회와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미 관리들이 계획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과 관련된 비사들이 빠질 수 없다. 뱀포드는 1968년 한반도를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고 간 푸에블로호 사건을 자세히 기술했다. 그보다 앞서, 2차 대전이 끝나고 냉전적 대립이 첨예화하던 시기에 일어난 한국전쟁은 초창기NSA에게는 ‘희망의 빛’이었다.
“북한의 공격 후 NSA는 재빨리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했다. 북한 통신문 도청요원은 2명에서 12명으로 늘어났다… 1951년 중반 무렵 38선이 남한과 북한을 양쪽으로 대강 나눈 상황에서 육군보안국 본부는 이화여대 교정에 자리잡고 중국군의 전투 계획을 거의 완벽하게 파악해 냈다.”
저자는 추리소설을 방불케 하는 묘사와 논리, 무엇보다 철저한 자료와 증언에 바탕해이 책을 끌고 간다. 첨단 첩보기술의 무차별한 침투로부터 과연 우리는 자유로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음모적시각’으로 보는 입장에서 애써 눈을 돌리고 싶다 해도, 이 책이 보여주는 세계의 이면은 놀랍다.
미국 정치ㆍ군사 전문가인 이삼성 가톨릭대 교수는 “냉전은 그 질서 속에서 번성한 인간과 집단들의 계획적인 기만과 조작과 폐쇄적인 자기중심적세계관이요, 인간 자신들이 쌓아올린 인간 바벨탑의 함정이었다”며 “이책은 미국 국가권력의 본질을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앵글을 제공한다”고 평했다.
■푸에블로호 사건
제임스 뱀포드는 '미 국가안보국 NSA' 에서 1968년 1월에 일어난 푸에블로호 사건을 냉전시대첩보전의 '척추'로 묘사하면서 한 장에 걸쳐 자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푸에블로호 사건은 한국 정부도 30년이 경과한 외교문서의 공개 규칙에 따라 1999년 1월 관련 자료를 공개, 당시 한국과 미국이 대응방안을 놓고 각각 강경ㆍ온건 입장으로 외교적 갈등을 빚었음이 밝혀지기도 했다.
뱀포드는 당시 푸에블로호의 주요 임무였던 신호정보 작전을 담당한 스티븐 해리스대위의 말을 인용한다.
"북한으로 가야 한다는 명령서를 받은 나는 매우 화가 났다. 우리는 (소련의) 캄차카 반도로 향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국어나 이런 종류의 정보 수집에 대해서는 훈련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푸에블로호 사건과 거의 동시에 일어난 1ㆍ21사태로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에 휩싸였다. NSA와 해군의 합동 작전으로 83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첩보활동을 수행하던 푸에블로호가 나포되자 미 백악관과 펜타곤은 전쟁에 대비했다.
NSA의 K그룹 책임자였던 진 셰크는 "펜타곤은 북한을 도발함으로써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도록 유도한 후 그들을 장악하려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에 억류된 승무원의 석방을 위해 군사적 조치보다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하자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그 논의는 1년 여를 끌었다.
소련 KGB요원 칼루긴은 뱀포드와의 인터뷰에서 "이사건이 주목할 만한 이유는 북한과 소련이 고도의 기밀 장비와 암호 자료를 입수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사건으로 소련과 북한 그리고 중국이 정치선전 게임을 하게 만들었으며, 엄청난 효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뱀포드는 "2001년 현재 푸에블로호는 평양을 지나는 대동강변의 한 부두로 옮겨져 관광객들에게 공개되었다"며 "이 같은 상황에도 NSA의 전직 고위급 관리들 몇 명에게는푸에블로의 마지막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거 푸에블로에 다량의 신호정보 장비를 설치했던 NSA의 계약업체들은 푸에블로를 되찾지 않은 데 분개했다"고 적고 있다.
미 국가안보국 NSA
하종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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