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2월15일 미국의 흑인가수 냇킹콜이 48세로 작고했다. 냇킹콜의 본명은 너새니얼 애덤스 콜이다.'왕'을 뜻하는 킹은 애칭이다. 이 애칭은 킹콜 트리오를 결성하기 직전인 1939년 콜 자신이 황금빛 종이 왕관을 머리에 얹고 클럽에 출연하면서 스스로 붙인 것이다.
앨러배머주 몽고메리에서 태어난 콜은 십대에 연예계로 나가 재즈와 팝송을 불렀다.
22살에 킹콜트리오를 결성해 악기 트리오로 큰 인기를 얻었으나 34세에 트리오를 해산하고 솔로 가수로 나섰다.
그는 흑인 영가에 기원을 둔 애수의 정서에 세련된 도회적 감수성을 결합해 독특한 재즈 세계를 구축했다.
대표적 음반은 '모나리자' '투 영'등이다.
왕가위 감독의 1999년 영화 '화양연화'에는 콜의 스페인어 음반에서 뽑은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의 선율이 흘러 콜을 기억하는 올드팬들의 심금을 울린바 있다.
냇킹콜의 딸인 나탈리콜도 아버지의 업을 이어 가수로 나섰다.
콜의 노래 가운데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은 '투 영'일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너무 어리다고 말하죠/ 사랑에 빠지기에는 너무 어리다고요/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건 그저 들어보기만 했을 뿐 결코 그 의미를 알수 없는 말이라고요/ 그렇지만 우리는 어리지 않아요/ 세월이 흘러도 우리 사랑은 영원할 거에요/ 그러면 언젠가는 사람들이 깨닫게 되겠죠/ 우리들이 결코 어리지 않았다는 걸요."
아마 이 가사가 옳을 것이다.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 가져온 직업과 보통교육의 일반화로 혼인 연령이 늦춰짐에 따라 정열이 가장 끓어오를 나이의 남녀에게 연애를 금제하는 관행이 폭넓게 자리잡기는 했지만,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답고 슬픈 연애로 꼽힐 로미오와 줄리엣 사이의 연애는 십대의 사랑이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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