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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김옥균 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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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김옥균 괴담

입력
2002.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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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에 우스개 소리 하나를듣고 배꼽 잡고 웃었다. 제법 긴 내용이지만 아주 재미있어서 그냥 끝까지 옮겨보겠다. 제목은 ‘김옥균괴담’.조선조 말 삼일천하의 혁명에 실패한 김옥균(金玉均)이 일본에 망명했다가 암살됐다. 그가 바둑의 달인이라는 소문을 익히 들어온 옥황상제는 하늘나라에 온 그에게 바둑 한판을 제의한다.

“그냥 두면 심심하니 내기를 하는 게 어떻습니까”라고 되받아오는 김옥균에게 옥황상제는 “무엇을원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김옥균은 “제가 이기면 조국에 천재 5명이 태어나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한국이 세계에 으뜸가는 나라가 되도록 말입니다”라고 말했고 그의 애국심에 탄복한 옥황상제는 “내가 지면 한 사람 더 얹어서 천재 6명이나도록 해주지”라고 약속했다.

그래서 그들은 뉴튼, 아인슈타인, 갈릴레오, 에디슨, 퀴리 부인, 호킹 박사와 같은 천재 6명의 탄생을 걸고 내기 바둑에 들어갔다. 일곱 낮밤의 혈전 끝에 김옥균이 한집반 차이로 이겼고 옥황상제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조국이 잘 살게 되었겠지’라고 믿은 김옥균은 지상시찰에 나섰다.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그 모양이 아닌가.어떻게 된 것인가 해서 한 사람씩 자세히 살펴보았다.

우선 뉴튼은 강남에서 최고잘 나가는 학원강사가 돼 있었다. 종래의 과학이론을 뒤엎을 만한 실력을 가졌으나 이를 시기한 학계로부터 ‘건방진 놈’, ‘선배를 무시하는 놈’ 이라는 등 소리와 함께 왕따를 당했다. 머리 좋은 그는 결국 골치 아프지 않고 돈 잘 버는 길을 택했다.

다음으로 아인슈타인을 찾았더니 중국음식집에서 음식배달을 하고 있었다. 오직 수학과 물리 밖에 할 줄 몰랐던 그는 내신성적에 걸려 대학에는 발도 못디뎌 보았다. 고졸 학력으로 취직도 안되고 해서 생계를 위해 ‘철가방’을 들었다.

갈릴레오는 ‘불행’하게도 북한 땅에 태어났다. 주체사상 외에는 공부할 게 없어서 죽어라고 파고든 끝에 ‘주체사상은 허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같은 연구결과 때문에 그는 자아비판대에 서게 되었고 속마음과는 달리 주체사상을 찬양하고 내려오다 “그래도 허구인데…”라고 중얼거렸다가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갔다.

에디슨은 예상대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냈으나 까다로운 각종 규제와 급행료 등에 가로막혀 빛을 보지 못하고 보따리 장사로 전전했고, 퀴리 부인은 머리는 좋았지만 ‘얼굴’이 받혀주지 못해 어쩔 수 없이 특유의 근면함을 살려 봉제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킹 박사는 역시 재주는 뛰어났지만 장애인에 대한차별로 인해 절망 속에 빠져 살았고 급기야 장애인 편의시설이 전혀 돼있지 않은 서울시내에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요절하고 만다.

그냥 웃어넘기기에는 씁쓸함이 진하게 배어있는 이 얘기는 공무원으로서 성공한 내 친구가 중학1년짜리 딸에게서 들었다며 해준 것이다. 중학에 들어간 이후 전교1등을 계속해온 딸이기에 그냥 귀엽게만 보았는데 또래의 아이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얘기라는 것을 알고 적지않이 놀랬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신문 칼럼에 꼭 이 얘기를 써서 가급적 많은 어른에게 읽혀야 한다”고말했다.

이 얘기의 결말은 아직 남았다.끝부분은 이렇다. “조국의 한심함에 너무나 화가난 김옥균은 스스로 귀신이 되어 한반도에 천재가 태어나기만 하면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땅에는 더 이상 천재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술 한잔을 기울이다 이 얘기를들은 나는 갑자기 귀신이 머리 위를 떠다니는 것 같아 오싹 했다. 정말 우리 사회에는 도처에 ‘김옥균귀신’이 도사리고 앉아 자라나는 새싹을 죽이고 있지 않은가. 다가오는 대보름에는 이 끔찍한 귀신을 내몰기 위해 이가 부러지도록 부럼을 깨물어야겠다.

신재민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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