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임배우는 우리가 흔히 연상하는 빨간 코를 단 피에로나 무성영화의 찰리 채플린이 아닙니다. 마임은 인간의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할뿐 어떠한 희극적이거나 과장된 몸짓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죠.”20여 년을 오로지 몸짓과 표정만으로 살아온 마임배우 유진규(50)씨가 자신의 첫 책 ‘말하지 않기에 더 느낄 수 있습니다’(중앙M&B 발행)를 냈다.
1976년 창작 마임 ‘육체표현’ 발표 후 1989년 제1회 춘천 국제마임축제를 창설하는 등 국내 마임계를 거의 홀로 개척한 1세대 마임 배우가 자신의 삶과 마임에 대한 단상을 처음으로 ‘글’로 적었다. “마임에서 배웠으되 마임으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이야기”란 과연 어떤 것일까.
설 연휴 직전에 만난 그는 먼저 1997년 뇌종양 판정을 받고 지리산 실상사에서 행했던 ‘침묵수행’ 이야기를 들려줬다. 무대에서 침묵만을 보여주는 마임 배우로서, 침묵의 위대성을 또 한번 발견하게 된 사연이다.
“마음 속 갈등과 번뇌, 분노를 내 몸이 견디지 못해 생긴 것이 바로 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일체 말을 하지 않고 오로지 뇌 속 암만을 떠올린 채 생활하기를 40일 여, 의사가 깜짝 놀라더군요. ‘종양이 말끔히 사라졌다’고요.”
그는 그러면서 “마임은 이러한 침묵의 참 의미를 배우의 몸을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는 비(非)언어 퍼포먼스”라고 정의했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세요. 눈이 오고, 봄이 오고, 나무가자랄 때 어떤 소리가 들립니까. 자연은 결코 말하는 법이 없죠. 마임 배우는 이러한 자연과 일상의 ‘마임’을인간의 여러 감정을 섞어 무대에 올리는 사람입니다.”
마임 배우로서 그는 우리 몸과주위 사물에 대해 남들보다 수십 배 더 관찰하고 탐구해 왔다. ‘팔꿈치가 없으면 인간은 평생 자신의 몸을 만져볼 수없다’는 발견부터, ‘댓돌 위에 대나무 그림자를 아른거리게 하는 바람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라는 고민까지 그는 진지한 마임 배우로서 끊임없이 묻고 대답해왔다.
이러한 고민의 흔적을 담아낸것이 ‘밤의 기행’ ‘동물원 구경가자’ ‘머리카락’ ‘빈손’ 같은 그의 대표 마임이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사는 것도 슬픈데 굳이 너의 몸짓을 보면서 더 슬퍼지기 싫다’고요. 마임은 이처럼 거짓말하지 않는 우리 몸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유일한 장르입니다.”
5월 8~12일 열리는2002 춘천 국제마임축제의 운영위원장인 그는 9월 ‘불립문자(不立文字)_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들’이라는 창작 마임을 새로 선보일 계획이다.
김관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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