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텔레콤은 올해 6명의 등기이사 중 50%를 사외이사로 채우기로 하고 3월 초 주주총회에서 3명을 선임키로 했으나 뜻밖으로 인물난에 부닥쳐 고심하고 있다.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 경영계와 학계ㆍ법조계 등의 유능한 인물들을 물색했으나 선뜻 나서는 인사가 없는데다 접촉중인 후보들도 요구사항이 만만치 않다.
사외이사에게 경영책임을 묻는 분위기 탓에 임원 배상판결이나, 벤처 비리, 경영부실로 인한 책임추궁을 우려하는 것이다.
LG텔레콤 관계자는 “삼성전자 이사회에 대한 배상판결과 각종 벤처게이트 이후 사외이사의 책임이 부각되면서 사외이사를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경험과 역량을 두루 갖춘 인재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모시기 비상
자산총액 1,000억원 이상 코스닥 기업 366개사는 올해부터 의무적으로 이사 총수의 25% 이상을 사외이사로 선임해야 하고 대기업(자산규모 2조원 이상)도 지난해 임기가 만료된 사외이사나 중도 사임한 사외이사의 결원을 메워야 한다. 휴맥스 KTF 등 코스닥의 대형 기업이 필요로 하는 최소 법정 사외이사 수는 400여명을 넘는다.
그러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펀드멘털이 검증되지 않은 중소형 벤처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갈수록 뚜렷하다.
업계 관계자는 “사외이사 수용조건으로 임원배상보험 가입과 경영 정보제공, 외부전문가 지원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지원자도 우량기업으로만 집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외이사 결원이 생긴 대기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LG는 건설과 데이콤에서 1명씩 사외이사의 임기가 만료돼 3월 주총에서 새로 선임해야 하지만 아직 적임자를 찾지못했다.
SK텔레콤도 등기이사 12명 중 6명을 사외이사로 채웠으나 1명이 중도에 그만둔 데다 1명은 임기가 만료돼 2명의 사외아사를 구해야할 처지. 현대중공업과 현대차는 지난해 사임하거나 중도 하차한 사외이사 결원 1명씩을 채워야 한다.
이들은 인맥을 총동원해 유력인사를 찾거나 상장사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사외이사 전문 사이트(www.outside-director.or.kr)와 경총 전경련 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의 인력뱅크에 후보 추천을 의뢰하고 있으나 아직 소득이 없다.
■빈익빈 부익부
기업 입장에선 업무영역에 대한 이해와 전문성을 갖추고 경영자문과 감시, 나아가 로비까지 해줄 수 있는 적격자를 찾으면 금상첨화.
그러나 특정 인물에 사외이사 제의가 몰리는가 하면 자격을 갖춘 사람들은 특정 대기업 계열사나 우량 기업만 선호하는 등 수급 불균형이 심각하다.
증권거래소가 지난해 690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전체 이사 4,218명 중 사외이사는 1,469명(선임율 34.8%)에 그쳤다. 이들의 직업은 경영인(25.2%), 교수(18.6%), 변호사(8.8%) 등이 절반을 넘었으며 이중 82명은 2개 이상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하고 있을 정도로 특정인 편중현상이 심하다.
■거수기에서 벗어나야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오너나 최고경영자의 친분에 따라 사외이사를 위촉하고 자사에 우호적인 인물만 찾고 있어 구인난을 부추기고, 사외이사가 경영에 대한 감시와 견제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국내 기업에서는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특정의안에 반대의견을 제시한 비율은 8%에 불과했다. 사외이사들의 이사회 참석율도 64%로 저조하다.
지난해 한 기업의 사외이사를 그만둔 서울대의 한 교수는 “석 달에 한번씩 열리는 이사회에서 이미 정해진 안건을 동의해주는 ‘거수기’ 역할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며 “사외이사들도 시간이 바쁘다는 이유로 토론을 피하는 경향이 짙다”고 씁쓸해 했다.
증권거래소 박창배 이사장은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경영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이려는 사외이사 제도가 아직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며 “사외이사로 선임될수 있는 인력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사외이사가 기업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아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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