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2월10일 독일의 시인 겸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바이에른주 아우크스부르크에서태어났다.1956년 몰(歿).브레히트는 20세기 독일이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이자 극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서푼짜리 오페라’ ‘사천의 선인’ ‘갈릴레이의 생애’ 등 그가 창작하거나 각색한 공연물들은 그것을 관람하지 못한 사람들의 귀에도 익숙하다.
그는 또 이른바 소격효과를 통해 관객과 연극 사이에 거리를 만들어내는것을 핵심기법으로 삼는 서사극이론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주의 지식인들이흔히 그렇듯, 브레히트도 부르주아 계급 출신이었다. 그는 자라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노래했다.
“나는 유복한 집안의 아들로 자랐지/내 부모는 내게 칼라를 달아주었지/ 또한 시중을 받는 습관을 가르쳤지/ 그리고는 명령의 기교를 가르쳤지/ 하지만 내가 자라 내 주위를 보았을 때/내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 명령을 하는 것도 시중을 받는 것도/ 그래서 나는 내 계급을 떠났지/ 그리고는 힘없는 사람들과어울렸지.”
그러나 브레히트는나치에 쫓겨 망명한 미국에서 다시 매카시스트들에게 쫓겨 동독으로 이주해 살면서도 끝내 ‘정통’ 공산주의자가 되지는 못했다.
그가 죽기 3년 전인1953년 6월17일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대규모의 노동자 시위가 소련군의 무력진압으로 끝나자 그는 공산당의 이기주의를 이렇게 빈정거렸다.
“6월17일봉기 뒤에/ 작가동맹 서기는/ 스탈린가에 전단을 배포케 했다/거기 씌어 있기를/ 인민이 어리석게도 정부의 신뢰를 잃어버렸으니/ 이것은 오직 두 배의 노동을 통해서만/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차라리 정부가인민을 해체하고/ 다른 인민을 선출하는 것이/ 더 간단하지 않을까?”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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