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조지 W 부시미 대통령의 ‘악의 축(axis of evil)’ 발언 이후 요동친 한미관계는 20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근본을 바꾸고 있다.또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의도가 정확히 노출됐고,북한의 자세도 어느정도 확연해졌다.
발언 이후 한국은 미국쪽으로, 미국은 한국측으로 한발씩 다가가는 모양새로 정상회담의 접점을 찾고 있다.
미국의 대북인식은 위협과 협상의 중간지점에 일단 멈춰 서 있다.
■ 정상회담 접점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던 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감안, 한발 물러섰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8일 “한미동맹이 국가존립의 근거”라고 강조했고, 최성홍(崔成泓) 외교부 장관은 9일 “WMD 문제는 우리의 관심사”라고 설명했다.
정상회담에서 일방적인 ‘욕심’을접고, 대테러 전쟁 차원에서 북한 미사일문제를 바라보는 미측 관심사를 충분히 반영하면서 한미 동맹강화라는 공통분모에 힘을 싣겠다는 고육지책이다.
미국도 8일 한국내 논란을 의식, 그간의 강경 발언을 누그러뜨린 채 햇볕정책의 변함없는 지지를 약속하면서 “남북화해가 한미양국의 공동관심사”라고 밝혔다.
남북관계의 장애물로 북미대화 정체를 지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로 미뤄 20일 정상회담에서는 한미 동맹강화, 북한 WMD에 대한 우려 등이 언급되는 가운데,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바탕으로 남북대화가 한반도 안정의 핵심임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획기적 대북제안은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의 진의
대화와 군사력 양자를 외교수단으로 간주하는 미국은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결코 수사(修辭)가 아니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측 인사들은 북한에 대해 당장의 군사적 조치는 고려하지 않으나, 상황에 따라 WMD가 테러리스트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제재방안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아울러 미 정부는 핵, 미사일, 재래식 무기, 심지어는정치적 이슈와 인권 등의 문제를 북한과 포괄적으로 논의한다는 협상안을 밝혔다.
북측이 또 다른 수단을 강구할 여지를 봉쇄하면서, 단계적으로 현안을 다뤄나가겠다는 뜻이다.
미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우리와 함께 일 할 의사가 있다면 미북관계를 개선할 수 있으며, 북한은 국제사회에 합류해 몇 가지 혜택을 볼 것”이라며 ‘예정된 당근’은 없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북한의 입장
미국의 압박공세에 대해 박길연(朴吉淵) 북한 유엔대사는 8일 북미대화의 여지를 열어두면서도 “전제조건 없이 동등한 입장에서 북미협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기존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특히 “미국의 적대정책이 개입된다면 남북대화나 접촉이 가능하겠느냐”며 남북 및 북미대화를 강력히 연계시켰다.
당근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미국,선뜻 발을 내딛지 못하는 북한, 이들 사이에 낀 우리 정부는 해결의 고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미간에 논의됐던 미측 인사의 평양 방문,북미협상의 채널 격상 등이 재론되는 듯한 분위기며, 남북대화를 통해 직접 북한에 WMD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