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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청량리588 단속'동행취재…시늉내다 20분만에 "단속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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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청량리588 단속'동행취재…시늉내다 20분만에 "단속 끝"

입력
2002.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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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우리 인권을 보호해 준다고요? 웃기는 소리예요.”7일 밤 10시30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 인근의 역전 파출소 앞. ‘서울시내 윤락가 일제점검ㆍ단속’에 나선 서울지방경찰청 여자기동수사반과 특수기동대 소속 경찰 40여명이 속칭 ‘청량리 588’의 단속을 위해 집결했다.

이에 앞서 경찰은최근 ‘군산 윤락가 화재 참사’ 이후 인권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윤락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쇠창살, 잠금장치 등 불법 시설을 단속한다는 거창한 명분을 앞세웠다.

그러나 밤11시가 돼서야 10명 씩 4개 조로 나뉘어 시작한 단속은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147개 업소 중 한 업소당 두명 씩 들어가 4,5개 방의 문고리가 밖에서 잠글 수 있도록 달리진 않았는지, 창문에 자물쇠나 쇠창살이 없는지 만을 확인한 단속은 20여분만에 끝이 났다.

그 짧은 시간동안 웃지 못할 광경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야한 차림을 한 윤락녀들이 빤히 쳐다보며 항의하자 경찰 두명이업소에 서로 들어가지 않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거나, 농담을 섞어 실실 웃으며 점검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몇몇 경찰은 “2층에 잠금장치 했어요?”라는 질문에 업소 주인이 “아니오”라고 답하자 그냥지나치기도 했다.

“이미 관할서에서 ‘훑고’지나간 데다 벌써 소문이 다 났을텐데 뭐가 나오겠느냐”는 단속 경찰들의 불평도 곳곳에서 들렸다.

꼬불꼬불 미로 같은 ‘588’지리를 몰라 ‘삼촌’이라 불리는 포주들에게 길을 묻기 까지 하는 경찰들을 지켜본 윤락녀들의 코웃음은‘망신 경찰’의 극치를 이뤘다.

윤락녀들은 심지어 여자기동수사반장과 동행한 한 남자기자에게 “오빠, 놀다가”,“싸게 해줄게”라며 깔깔대기도 했지만 경찰은 속수무책.

윤락녀들의 비웃음과 냉소 속에 1시간 전 결연한 의지를 다지던 경찰들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역력했다.

당초 단속 계획에 포함돼 있었던 미성년자 고용 등에 대한 단속에 대해서는 ‘나몰라라’식이었다.

기자가 앳돼 보이는 한 윤락녀를 지목하자 그제서야 신분증을 확인했고, 경찰 무전기로 인근 파출소에 신분증이 없는 다른 윤락녀의 신원조회를 하는 데만 수십 분이 걸렸다.

한 포주는 “경찰이 이렇게 굼떠서야 무슨 치안 활동을 하겠느냐”며 오히려 짜증을냈다.

20여분의 ‘초 스피드’단속을 마친 뒤 단속경찰들이 곳곳에 무리지어 담배를 피우거나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잔뜩 몸을 웅크리자 기자들의 눈치를 보던 한 간부가 직접 단속에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 소득은 포주가 숙소겸 물품 보관용으로 사용하는 1층 방 하나의 잠금 장치가 밖에 설치돼 있는 업소의 업주와 윤락녀2명을 연행한 것이 고작.

이를 지켜본 다른 한 경찰은 “아가씨 숙소도 아닌 데 문제될 게 없지 않느냐”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경찰은 “윤락녀 인권 보호를 위한 경찰의 첫 시설 단속”이라고 의미를 부여했지만 결과는 '전시성 단속'에 그치고 말았다.

한편 경찰은 이날 서울 청량리,미아리 등 5개 윤락가에 대한 일제 단속으로 윤락업주 등 모두 입건하고,호객행위를 한 22명을 즉결 심판에 넘겼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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