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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에세이 / 아나운서도 때론 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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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에세이 / 아나운서도 때론 튀고 싶다

입력
2002.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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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아나운서팀에서 며칠 전 작은 회의가 열렸다. 지난 추석특집 MC 총출동에 이어 설날 특집으로 연예인 팀에 맞서 숨겨진 끼와 재능을 선보이라는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주어진 팀은 솔로 및 그룹을 포함해 모두 여섯. 나는 당연히 솔로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추석 때 가수 이정현의 반짝이는 금색 원피스를 입고, 짙은 눈 화장에 부채를 휘두르며 립싱크를 했던 것이 인상적이었나 보다.

그런데 어쩐지 이번에는 내키지 않았다.

우선 한정된 팀 안에서 “나보다는 좀 더 발랄하고 참신한 신입 아나운서들이 깜찍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을 내줘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둘째로는 아침 6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 일 다 끝내고 장소를 옮겨 밤 10시, 11시까지 연습해야 하는 일정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심은 따로 있었다.

지난번보다 잘 할 자신도 없거니와 고만고만한 모습으로 오히려 시청자들이 식상함을 느끼지나 않을까, 아니면 그나마 아나운서로서 쌓아온 정돈된 이미지를 보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부조화'를 느끼시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걱정을 하기에는 나는 이미 많은 '외도'를 한 것 같다.

SBS 주말 드라마 '화려한 시절'에서 사범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철진'으로 나오는 탤런트 류승범의 야간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역을 맡질 않나, 불우아동돕기 자선패션쇼에서 모델로 무대에 서질 않나,일요일 아침에 방송되는 '도전 1,000곡' 에서는 한 냥 짜리 금 목걸이를 놓고 라이브 가수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지 않나…

대부분 이러한 아나운서들의 작은 '외도'를 적극 찬성하며 오히려 기존의 정형화되고 딱딱한 이미지를 벗고 친근하게 느껴져서 좋다고 하지만, 간혹 뉴스나 교양 프로그램에서 바른 말 고운 말로 교훈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아나운서 그 자체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분들도 있다.

아무튼 시대의 요구인지, 방송사의 요청인지, 아니면 자발적인 자구노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나운서들은 때때로 변신을 거듭하며 프로그램과 시청자들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 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설에는 온 가족이 모여 좋은 덕담도 나누시고, 저녁에는 아나운서들이 퇴근 후에 땀 흘리며 준비한 장기자랑보시면서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저는 뭐하냐구요? 아마 근무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전하는 라디오 뉴스 들으시면서 편안한 귀성 길 되시고, 임오년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이현경ㆍSBS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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