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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달빛 아래서 斷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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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달빛 아래서 斷想

입력
2002.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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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지나더니 내일모레가 설이다. 어린이 놀이터에 나와 오랜만에 달을 본다.인간이 달에 다녀오고 달의 표면이 어떻게 생기고… 달속에 계수나무 토끼가 있다고 아무도 믿지 않지만 그래도 달은 건재하다.

여전히 신비하다. 인간의 깊고 진한 정한이 그만큼 오랫동안 달에 투사되고 축적되었다는 표시 이리라. 낯익으면서도 새롭고 멀리 있으면서도 우리를 설레게 하는 것, 쿨~문.

쉽게 열광하고 증오하고

신비하고 경이로운 요소들이 우리 삶에서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것을 절감한다.

새로움과 호기심을 느끼는 일은 점점 드물어지면서 우리의 정서는 익숙해진 것들에 대한 지루함과 낯선 것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양분되는 듯 하다.

어느 때보다 새로운 것들이 우상화되는 이시대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이 우리를 무디게 만드는가.

자고 새면 바뀌는 핸드폰 모델과 산적한 뉴스들, 넘쳐나는 새로운 것들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를 보다 더 지치게하는 것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어지러운 사태들과 이에 대응하는 우리의 격앙된 태도이다.

우리의 삶은 과장되게 들떠 있고 어떤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우리의 방식은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월드컵 승리를 위한 함성은 일상적인 것이 되었고 광고에서는 성공한 직장인들이 매일저녁 축배의 노래를 열창한다.

이런 열광을 통해 우리가 대리만족을 맛보기도 하고 억압된 것을 털어낸다고도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집단적인 환호에 휩쓸려가면서도 그것과 우리 삶의 괴리 때문에 무기력 해진다. 우리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한 반응 또한 격렬하다.

테러사태 이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파괴적인 단어들은 피하기 힘든 폭력이 되어 쏟아진다. 이것을 견뎌내기 위해 우리 역시 앞뒤없이 격분한다.

문제는 이런 소용돌이 속에서 지쳐버린 우리가 정작진실을 밝혀 내야하는 순간에 손을 놓아버린다는 점이다.

사태의 본질이 우리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판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는 점이다. 이것만은 고쳐야한다고 거듭 강조되는, 쉽게 흥분하고 신기하게 싹잊어버리는 고질적 습관이 이래서 반복된다.

집단적인 문제에 대한 우리의 소모적인 반응은 개인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예외없이 드러난다.

‘나는 승부한다, 당당하게 제왕처럼’. 주술처럼 우리를 유혹하는 이 말들이 그러나 항상 효력을발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플때, 늙어갈 때 그리고 죽음 앞에서 우리는 멈칫거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두렵고 낯선존재를 우리는 외면하고 거부한다.

그가 누구인지 내가 왜 그를 겁내는지 살피는 과정은 황급히 생략된다. 그 일은 지루하고 재미없으며 그것을 감수할 수 있는 인내심과 훈련이 우리에게는 부족하다.

우리는 성형클리닉에 의존하고 생명공학에 집착하는 것으로 이 과정을 대신한다.

외면 속에 묻혀있는 진실

피상적이고 과대포장된 삶의 풍토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새로운 것을 더 이상 못 느끼게 한다.

지금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지나친 열기를 경계할 일이다.

건강한 몸과 정신으로 우리의 문제를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 우리의 관심의 대상을 왜곡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남을 제대로 알게 되는 과정을 통해 얻게되는 자기인식을 놓치지않기 위해서. 실제로 우리가 열광하거나 증오하는 대상들은 보이는 것 만큼 막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들의 막강함은 우리의 무지와 외면이 만드는 것일 수도 있다.

막강한 것들에 대한 우리의 감정 수위를 낯추고 이들을 생활속으로 받아들이면 그들의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있을가.

그들을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하면 더이상 우리는 두렵지 않을까. 역설적이게도 낯설어 회피했던 것들과 친숙해지면 이제까지 너무 잘 알아 지루해 보이던 것들이 새롭게 느껴질까.

작고 조용한 것들이 생기를 띄게 될까. 오랜만에 달빛 아래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서 숙ㆍ이화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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