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특수상황 감안… 北은 협상 나서야"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1월29일)를 통해 북한을 이란 이라크과 함께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일보는 외교부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을 위해 귀국한 양성철(梁性喆) 주미 대사, 나종일(羅鍾一) 주영 대사, 이태식(李泰植) 주 이스라엘 대사, 오윤경(吳潤卿) 주 이집트 대사와 함께 9ㆍ11테러 이후 변화한 미국의 세계전략과 대북정책, 이에 대한 중동지역의 분위기와 우리 정부의 대응을 진단하는 좌담회를 마련했다.
양 대사는 정부중앙청사에서진행된 좌담회가 끝난 직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워싱턴에 즉시 복귀하라는 지시를 받고 7일 귀임했다.
▼梁 대사
부시 미 대통령이 표현한 ‘axisof evil’이라는 용어가 한미,남북, 북미 관계의 전제로 등장했습니다. ‘axis’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에 대항한 독일ㆍ이탈리아ㆍ일본 3국을 지칭할 때 사용됐으며, ‘evil‘은 미 레이건 행정부 때 구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으로 명명하면서 처음 언급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axis’와 ‘evil’이란 단어로 요약한 것은 분명한 근거나 구체적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미 정보망에 뚜렷한 근거가 포착된 것 같습니다.
9ㆍ11 테러 이후 세계 평화질서에 대한 미국의 관점에 커다란 변동이 일고 있습니다. ‘악의 축’ 표현은 대량살상무기 확산 문제를 미국이 직접 해결하겠다는 것입니다.
▼羅 대사
적의 정의를 어떻게 규정하는 것은 중요한 정치행위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구 소련 와해 이후 분명한 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9ㆍ11 테러 이후 적을 찾은 것입니다.
세계적 지도자를 자처하는 미국이라면 1930년대 미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들고 나왔던 ‘빈곤과의 전쟁’ 처럼 보편적 의미로 적을 규정했어야 하는데…. 불행한 일입니다. 부시 행정부는지난해에는 막연히 테러리스트 집단을,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특정 국가를 적으로 규정했습니다.
▼李 대사
미국은 테러리스트와 이들을 지원하는 국가를 제거하겠다고 공언해 왔습니다. 테러리스트는 개인이나 집단개념입니다. 따라서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단이 없습니다. 반면 적이 국가 차원으로 규정될 경우 구체적 억지력과 경고가 가능할 것입니다.
부시가 3개 국가를 지목한 배경에는 바로 ‘억지력과 경고의 가시성’이 담겨있다고 봐야 합니다. 북한이 대량살상무기인 미사일을 중동으로, 그 중에서도 이란 이라크 시리아로 수출하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은 중동지역에 대한 북한 미사일 수출의 새로운 증거를 포착 했다기보다기존의 미사일 수출을 방치할 경우 일촉즉발 상황인 중동정세에 더 큰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최근 미국측 자료에 의하면 북한은 미사일의 장비ㆍ기술ㆍ부품과 인력을 이 지역에 수출해 왔고, 일부 지역에는 사정거리 1,300Km의 ‘취합’3, 4 미사일과 관련한 기술ㆍ부품과 인력을 공급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吳 대사
중동지역에서는 미국이 적극적이고 장기적으로, 또 광범위하게 (테러전을) 확대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팽배해 있습니다. 가뜩이나 경제활동이 위축된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군사 공격을 막는 데 최선의 외교적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분위기입니다.
▼羅 대사
테러전 확대에 대한 영국 정부의 공식 입장은 아직 없습니다. 여론을 보면 진보쪽은 옳지 않다는 견해가 우세하고, 보수쪽은 찬동하는 쪽이 많습니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도 전쟁이 확대되는 것에 대해 좋은 분위기는 아닙니다.
▼梁 대사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이후 북한, 이란, 이라크 3국의 공통점을 강조하는 시각이 많습니다.그러나 한반도의 특수상황, 지역적 역학구도 등을 감안, (부시 대통령의 방한 때) 북한은 이라크와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합니다.
부시 행정부는 대북협상에서 3C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고(candid), 건설적이며(constructive), 상호협력(cooperative)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북한이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머리를 숙이고 들어오라는 것은 아닙니다.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 대응에 대한 각국의 호응을 분석한결과, 북한이 미흡했다고 본 것 같습니다. 그들(북한)이 기회를 놓쳤다는 판단입니다.
▼吳 대사
중동지역에서는 9ㆍ11 테러 이후 부각된 문명충돌론의 반향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종교적ㆍ지역적ㆍ국가적차원에서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종교적 차원에서는 9ㆍ11 테러 이후 아랍인과 무슬림 전체가 테러와 연관되 매도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용의 종교인 이스람을 테러를 옹호하는 종교로 인식하는데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항공기 탑승 때의 과잉검색이나 아랍인이라는 이유로 테러사건 용의자로 체포되는데 의아해 하고 있습니다. 지역적 차원에서 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중동평화 문제입니다.
아랍권은 팔레스타인의 봉기를 식민지배에 대한 정당한 권리행사로, 테러와 구별돼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돌을 던지는 것에 대해 미사일과 헬리콥터로 공격하는 이스라엘의 조치는 정당방위를 빙자한 또다른 테러라는 것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과거 걸프전 때도 사우디 등 온건 아랍국들은 미국을 적극 지원했고 이번 대테러전에서도 직ㆍ간접적으로 기여했습니다.결국 문명충돌론은 이 지역 국가간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호도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李 대사
문명충돌로 규정하기 보다는 가치관의 대립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슬람권에서도 수니파와 시아파의 대립이 있으며, 서구문명간에도 ‘내부의 총돌’은 상존하지 않습니까.
▼梁 대사
피상적 문명충돌의 이면에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깔려있습니다. 한국은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 된 모범사례입니다. 국제적인 반테러 캠페인에 동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동시에 빈부격차 해소 문제는 국제적으로 빈부의 중간에 놓여 있는 우리의 적극적 아젠다일 수 있습니다.
▼羅 대사
지난 세기의 정치적 아젠다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대립이었다면 21세기는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의 갈등이라고 봅니다. 즉 이념의 문제가 현실의 문제로 자뀐 것입니다. 지난 한 세대(약 30년) 동안 세계의 빈부격차는 확대됐습니다.
부유한 국가는부의 창출에 성공했지만, 가난한 나라는 가난을 벗어나지 못해 상대적 빈곤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吳 대사
국제 갈등의 문제가 일차적으로 경제에 있다면 중동지역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더욱 고조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중동지역에서 원유의 80%를 수입하고 있으며, 아랍연맹에는 22개 국가가 가입돼 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지금이야말로중동진출의 새로운 적기일 것입니다. 이념적 이유로 미국과 EU가 주춤하는 사이, 우리가 중동의 틈새시장을 현실적으로 파고 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李 대사
동감입니다. 국제관계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를 단순한 인과관계로 정리할게 아니라 국가간 이해관계를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외교 차원에서 정치와 경제는 한 축으로 고려해야 하지만, 필요에 따라 양자를 분리할 필요도 있습니다. 지금이 그러한 선택의 시기입니다.
▼梁 대사
외교협상은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는 형식(position based style)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즉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고 상대방을 맞춰가는 것입니다. 과거 대북협상은그렇게 진행됐습니다. 그러나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 우리 문민정부 4년 동안 새로운 방안이 시도됐습니다.
이해관계에 기초한 협상(interestbased style)입니다. 상호의 입장(position) 차이를 접고 일단 협상테이블에 앉자는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 이후 북미관계가 ‘interestbased style’에서 다시 ‘position based style’로 되돌아가고 있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양성철(梁性喆ㆍ62) 주미대사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한국일보 기자로 일한 뒤 미 캔터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캔터키대 교수,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를 거쳐 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주미대사 부임은 2000년 7월.
◇나종일(羅鍾一ㆍ61) 주영대사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대학원장,한국유럽학회장을 지냈으며 현 정부 들어 국정원 1차장ㆍ국정원장 외교특보를 역임. 지난해 5월부터 주영대사로 있다.
◇오윤경(吳潤卿ㆍ57) 주이집트 대사
서울대 행정학과 출신. 외무고시 4회에 합격, 주 오만대사관 참사관, 주 유엔 공사, 본부 조약국장,주뉴질랜드 대사, 외교안보연구원 미주연구부장을 역임했다.
◇이태식(李泰植ㆍ56) 주이스라엘대사
서울대 외교학과를 나와 외무고시 7회로 입문, 외교부 동남아과장, 주 EU 공사,외교부 통상국장을 거쳐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무차장을 역임했다.
박진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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