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작가 올더스 헉슬리는 S.F(공상과학)소설의 고전 ‘멋진 신세계’에서 구세계와 신세계를 가르는 기원(紀元)을 A.F.로 표기했다.After Ford, 다시 말해 ‘포드 이후’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이 소설이 출간된 20세기 초 시대 배경이 깔려 있다.
당시 미국에서 헨리 포드에 의해 포드자동차라는 공룡기업이 등장했다. 헉슬리는 사상 최초로 대량생산체제를 갖춘 이런 거대기업의 출현을 인류가 신세계로 돌입하는 분기점으로 보았던 것이다.
■ 헉슬리의 풍자는 오늘날 기업의 정치ㆍ사회적 파워에 비쳐볼 때 참으로 경탄할 만한 선구자적 예언이다.
지금 지구촌의 지배이념 ‘세계화’라는 것도 기업에서 나왔고, 공산체제를 멸망시킨 근원도 자본주의 기업에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정부의 방한 초청을 외면하던 미국 공화당의 한 의회 지도자가 최근 방한한 것도 결국 비즈니스 목적에서라는 사실은 기업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다.
어떤 학자들은 “기업이야말로 현대사회에서 ‘가치’의 창조자”라고 말한다. 과거 교회와 국가가 만들어 냈던 사회적 가치 창조를 이제 기업이 대신하고 있다는 말이다.
■ 기업은 최소 200년 이상 장수할 수 있다는 이론이 있다. 일본의 스미모토 같은 기업들을 보면 일리가 있는 얘기다.
그러나 대부분 기업은 이런 자연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 외국의 한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유럽과 일본의 기업 평균수명은 12.5년에 불과하다.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의 평균수명도 기껏해야 40~50년이다. 이에 대해 어떤 학자는 “기업경영의 초점을 인간공동체에 맞추지 않고 손익계산서에 매달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 엊그제 폐막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36개 다국적 기업총수가 서명한 기업시민(CorporateCitizenship)헌장이 채택됐다.
사회 구성원(시민)으로서 기업의 책임과 윤리를 강조하는 구체적 실천강령이 담겨 있다.
이것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구적 저항에 직면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의 반성이자 현실적 자구책이기도 하다.
최근 엔론 파장으로 미국 증시 전체가 출렁거린 게 방증하듯 기업의 경쟁력과 장수비결에 윤리와 도덕 무장이 갈수록 불가결의 요소가 되고 있다.
송태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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