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축’으로 지목하는 등 강경해지고 있는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을 둘러싸고 논의가 엇갈리고 있다.정부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관계이며 미국과의 정책조율에 우선 순위를 두겠다”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대북 강경책은 한반도 평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당당하게 설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적극적 공조/ 유호열 고려대 교수ㆍ북한학과
부시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이란, 이라크와 함께 ‘악의축’으로 규정하고 이들 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획득 등 국제테러와의 연계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한 이래 한반도에 새로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 뿐만 아니라 행정부의 핵심 고위 관리들도 연이어 북한의 미사일 수출 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북미관계 뿐만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그 효용성을 문제 삼으면서 한미관계에도 이상 기류가 조성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고위 당국자들이 기존의 안이한 태도와 도식적인 햇볕정책의 고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이후 북한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은 9·11 테러사태이후 더욱 굳어졌다.
우리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지난 수년간 북한을 변화시키고 한반도에 평화와 안전을 정착시키는데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되어 조만간 북측의 성의있는 태도 변화가 없다면 대테러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경고를 하게 된 것이다.
지난 수년간 햇볕정책을 추진해온 우리 정부는 그 의지와는 관계없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이 보장되는 근본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이루는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북한 역시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체제안정과 국가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으며 정세 오판과 정략적 판단으로 일관함으로써 오늘의 위기를 자초하게 되었다.
우리 정부는 이제라도 미국의 대북인식과 불량국가의 제거라는 부시행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와 수행 역량을 정확하게 파악하여야 하며 특히 9ㆍ11 테러사태 이후 국제 질서의 룰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었음을 심각하게 고려하여 새로운 대북정책추진과 한미관계의 재정립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이 제기하고 있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의 개발과 확산문제에 대해 우리 정부는 허심탄회하게 미국과 정보를 교환하고 그 해결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
근거없는 낙관론과 ‘악의 축’ 발언에 대한 감상적 비판은 동맹국으로서, 그리고 대테러전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와 미국과의 전통적인 우호관계 및 공조체제를 근본적으로 훼손시킬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기존의 햇볕정책에 대한 무리한 집착은 우리의 역량과 국가 이익을 감안하지 않은 이상주의적 태도로서 하루 속히 지양되어야 한다.
북한을 남북대화 및 북미대화로 나올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안은 유화적인 유인책을 제시함으로써가 아니라 북한이 대화와 협상에 나오지 않으면 안될 상황을 조성하는데 있다.
한미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이러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갈 수 있도록 우리 정부와 야당, 그리고 국민들은 초당적이고 냉철한 준비를 하여야 한다.
■반대/ 김재홍 경기대 교수·남북한정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묶어 ‘악의 축’이라고 몰아부친 것은 그 자신의 현실주의 측면에서 보아도 비현실적이다.
북한을 무력으로 굴복시키기가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자극만 한 꼴이다.
미국이 굴복을 받고 싶은 나라라면 1960년대의 쿠바나 1991년 걸프전 당시의 이라크, 그리고 대테러전쟁에서 아프가니스탄이 지금의 북한보다 훨씬 앞 순위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어느 나라한테 굴복을 받을 수 있었는가. 미국의 쿠바침공은 소련이 힘을 가졌을 때였으나 그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실패했다.
또 미국이 걸프전에서 승리했다고 하지만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건재하다. 부시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오사마 빈 라덴과 오마르를 체포하고 테러조직을 뿌리뽑겠다는 당초의 목표를 고려하면 절반의 승리에 불과하다.
쿠바나 이라크도 마음대로 못한 미국이 북한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려 한다면 턱없이 무모한 짓이다.
북한에게 단순히 지정학적으로만 인접국인 것이 아니라 후원국 위치를 복원한 중국과 러시아가 가만 있을 리가 없다. 북한을 굴복시킬 수 없기 때문에 포용정책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같은 성격의 국가로 취급한 것은 국제정치 상식에 어긋난다. 빌 클린턴 전대통령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국무장관이 비판한 이유일 것이다.
더구나 북한은 그런 나라들과 달리 이미 유럽연합을 비롯한 많은 서방국가들과 새로이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국제사회에 발을 내딛지 않았는가. 서방에서도 부시를 곱지않게 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상식에 맞지않는 발언을 했기 때문인지 그의 속셈이 불순해 보인다. 대테러 전쟁이 절반의 승리에 그치자 미국민의 눈길을 돌릴 대상이 필요해졌을 것이다.
11월로 예정된 중간선거를 의식해서 그랬다는 풀이도 있다. 더구나 오는 19일 방한에 앞서 대북 적대감을 고조시켜 F15전투기 등 안보상품을 판촉하려는 의도라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행보다.
북한이 미국의 강경압박전략 때문에 머리 숙이고 미사일협상 등에 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악의 축’ 경고는 한반도에 긴장고조만 야기시킬 뿐이다.
그 결과로 외국투자가들의 철수사태와 제2의 환난으로 한국경제가 다시 추락할 위기에 몰릴지도 모른다.
경제위기는 북한에게도 파급될 것이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앉아서 지켜볼 일이 아니다.
남한당국과의 합의사항을 실천해 감으로써 미국의 정책에 능동적으로 영향을 주겠다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6·15공동선언 제1항에 명기한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원칙을 지키는 길이다. 남한 당국도북한 문제에 관한한 우리가 전문가이며 미국의 대북 강경책이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온다는 사실을 미국측에 분명하게 전달하고 대북정책 변화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할 것이다.
■'악의 축' 지목 왜?
北 개발중인 대륙간 탄도탄 美본토 위협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연두교서 발표에서 이란,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사유는 대량살상용 무기의 개발과 수출.
콜린 파월 미 국무부장관은 5일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라며 “미국은 즉각적인 군사개입을 준비하고 있지 않지만 북한이 미사일 개발과 수출을 포기해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현재 사거리 1만㎞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전단계인 사거리 4,300~6,000㎞의 대포동 2호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1990년대 들어 급진전했다. 91년 사거리 1,300여㎞의 노동 1호 개발에 착수, 93년 시험발사에 성공하면서 본격화해 대포동 1호등의 개발로 이어졌다.
시몬 페레스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4일 이란과 북한이 사정거리 1만㎞의 장거리 미사일을 공동개발중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북한은 또한 이란 이라크 리비아 이집트 등에 미사일을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미사일 개발 포기 요구에 대해 북측은 미사일 개발은 군사 주권의 문제이며 평화중재적 성격이라고 주장한다.
미사일 수출에 관해서는 협상의 여지를 두고 있는데, 북측은 수출을 포기하는 만큼의 대가를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