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올림픽(9~25일)이 열리는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어학연수 중인 Y대 4년 최모(22ㆍ여)씨는 요즘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최씨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솔트레이크시티 자원봉사회’사무실에 지난해말부터 한국으로부터 숙박, 관광 및 경기 입장권을 구해 달라는 ‘민원성’전화가 빗발치고 있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는 미국인들이 ‘정해진 절차를 받으라’고 해도 알아듣지 못하면 저한테 전화를 바꿔줘요.
제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높은 사람 바꿔라’,‘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느냐’는 식이죠.”최씨는 “동료들이 ‘네 친구(your friend)한테 또 전화왔다’, ‘그게 너희 나라방식이냐’고 비아냥거릴 때면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다”고 하소연했다.
고위층들의 막무가내식 민원이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도 국제적 망신을 사고 있다.
이들이 내거는 직함은 주로 지방자치단체의원, 대기업 간부, 정치인 등. 호텔과 차편 예약, 스키장과 골프장 등의 할인 등을 요구하는 전화가 올림픽조직위원회, 자원봉사회 및 한인회 등에하루 3~5통씩 쏟아지고 있다.
수 개월전 예약이 끝난 특급 호텔 객실이나 이미 매진된 피겨스케이팅 등 인기 종목 입장권을 구해 달라는 이들의 민원유형도 ‘협박형’, ‘읍소형’,웃돈을 얹어 주겠다는 ‘금전형’ 등 가지가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솔트레이크시티 내 G 호텔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유학생 김모(28)씨는 “최근 한국의 국회의원비서관이라는 사람이 예약을 부탁해 거절하자 ‘우리 같은 사람을 위해 방 몇 개는 남겨두지 않느냐’고 오히려 호통을 쳤다”며 고개를 저었다.
영어 실력이 모자라는 이들의 주 공략 대상은 유학생 및 현지 교민들. 김씨는 얼마 전 한 지자체 의원으로 부터 시간당 20달러(약 2만6,000여원)의 가이드 아르바이트를 제안 받았으나 거절했다.
김씨는 “유타주에는 영사관이 없어 외교관들의 ‘접대’를 못 받는 높으신 분들이 아쉬운 김에 유학생이라도 찾는 것 같다”며 “신분을 이용한 각종민원이 외국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한심하기만 하다”고 혀를 찼다.
현지 교민들의 더 큰 걱정은 대회 기간 중 몰려올 한국 관광객들의 추태.
밤10시면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고 알코올도수 3.2도 이상의 술은 아예 판매하지 않는 등 조용하고 경건한 생활로 유명한 솔트레이크시티에서 관광객들의 요란한 음주, 도박 등은 전체 교민의 이미지에도 먹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인회 관계자는 “대기업 간부라는 사람이 벌써 교민이 경영하는 술집이 있는지, 내기 골프가 금지돼 있는지 등을 전화로 물어 왔다”고 전했다.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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