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영화와 다른 점 세가지.첫째, 불과 1㎙ 앞에 진짜 사람이 있다(관객과 눈이 마주칠 수도 있다).
둘째,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이 명백한 허구임을 누구나 안다(소품을 들고 나가는 게 다 보인다).
셋째, 지금 이 시간 오로지 이곳에서 이 연극만 공연된다(전국 동시 개봉이 애초 불가능하다).
서울 대학로 극장 아룽구지에서 공연중인 극단 목화의 ‘지네와 지렁이’(오태석 작ㆍ연출)는 이 같은 연극만의 특징을 잘 간파한 작품이었다.
배우는 상대방의 위치에 상관 없이 관객만 보고 말했고, 무대는 어떠한 설명도 없이 숲이 되고 지하 탄광이 됐다.
고도의 상상력과 몰입 없이는 어떤 내용이 진행되는지도 모르게끔 연극은 관객을 구속했다.
작품은 환경오염과 일본자본의 지배로 신음하는 2010년의 한국을 고발했다.
남과 북이 이념문제를 놓고 대치하는 사이 어느새 하루에 수천 명이 이민을 떠나는 암울한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린 것이다.
빚을 갚기 위해 신체장기를 판 사람들의 악다구니, 독극물 같은 세상을 구하는 영물로서 오리가 대거 등장하는 장면은 충격이면서 감동이었다.
그러나 이 연극의 가장 큰덕목은 그 철저한 비(非)사실성에 있었다.
정교한 소품과 의상, 무대장치는 처음부터 관심 밖이었다.
외국에서 생수를 사다 먹는 오염된 지상의 현실조차 지하탄광에 사는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또한 주인공이 3,000년 묵은 지네와 지렁이의 마술로 시간여행을 떠날 때도 배우는 객석을 향해 슬슬 걸어나갈 뿐이었다.
진짜 현실처럼 모든 것을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영화. 애써 ‘이것은 허구다’라고 외치는 연극.
‘지네와 지렁이’는 이 차이에서 비롯되는 ‘연극 보기’의 재미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이 재미는 극장 아룽구지를 찾은 140여 명의 관객만이 누린 특권이었다.
17일까지 화~금 7시 30분, 토ㆍ공휴일 4시 30분ㆍ7시 30분, 일 3시ㆍ6시. 김병옥 정진각 황정민 이수미 이도현 등 출연. (02)745-3967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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