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본격적인 선거철을 앞두고정치권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고 나섰다.지방자치단체장과 대통령 선거를 맞아 노동계와 시민단체 등의 압력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전망이고, 일부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 경제 논리에 어긋나는 정책을 내놓을 가능성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지난 주말 열린 한 모임에서 손길승 SK그룹 회장이 과거처럼 관행적인 정치자금 요구에는 응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예다.
손 회장의 이 같은 공개적 발언은 지극히 옳은 말이고, 또 당연한 것이다. 손 회장은 “요즘 기업 중 ‘이것 좀 봐 달라’며 자금을 주는 곳은 없다.
다만 ‘우리를 나쁘게만 하지 말아달라’는 뜻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라며 “과거보다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는 정당한 요구에만 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외환위기 이후 그토록강조해 왔던 것이 기업의 투명성 확보였던 점을 고려하면 부당한 정치자금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손 회장은 “자유민주주의 창달에 관한 정치적 비전을 갖춘 사람이라면 재계 공동으로 정당하게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다만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재계가 이 과정에서 강력한 이익단체로 등장해 집단 이기주의가 심화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재계는 이미 2000년 2월 총선을앞두고 정치 활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적이 있다.
시민단체 및 노동계의 낙선ㆍ낙천 운동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시각은 곱지만 않았다.
재계의 정치 활동이 합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과거의 경험 등에 미루어 부작용과 후유증이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재계는 다른 이익단체와는 달리 막강한 자금력과 조직력을 가지고 있어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무척 크다.
현 상황이 그 당시에 비해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재계의 이번 움직임으로 가장 반성해야할 부문은 정치권이다. 정치 자금은 정경유착의 상징이었고, 이로 인해 재계의 부담이 얼마나 컸으면 이런 발언이 나왔겠는가.
정치권은 정치자금법 개정에만 합의했을 뿐 자체 정화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이 뒤따르지 않아 유감스럽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 확보는 부당한 정치 자금 근절에서부터 시작하며,이제는 더 이상 늦출 수 없음을 정치권과 기업은 모두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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