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각과 여권진용 개편으로 임기말 마무리를 시작한 김대중 정부에 또 하나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조지 W 부시 대통령 등 미국 지도자들이 잇달아 쏟아내고 있는 대북 강경 발언이다.
급기야는 대북 온건파로 분류되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까지 이 행진에 가담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상하원 합동의 연두교서에서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 이라고 표현하자 파월 장관도 3일이 지나 북한 지도부를 ‘악(Evil)의 집단’이라고 말했다.
대북 강경책을 주도하고 있는 콘돌리사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북한에 대해 토해내고 있는 거친 표현은 새삼 얘기할 필요조차 없다.
美 잇단 對北 강경발언
미 행정부의 대북 강경자세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배려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공화당 정권의 근본적인 대북 불신에서 연유되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있다.
또 남북문제를 한반도 안정과 민족 문제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우리정부의 인식과는 달리 미국정부는 북한을 테러집단 응징과 대량살상무기 박멸이라는 세계전략에서 보고 있다.
미 공화당 정권의 대북 강경태도는 올 가을 중간선거 등 미국의 정치일정과 이미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한 부시 행정부의 고삐풀린 강경태도 등을 감안할 때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가 않다.
김대중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자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싫든 좋든 간에 남북화해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의논해야만 할 피할 수 없는 대화상대다.
하지만 9ㆍ11 테러사태 후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제왕적 대통령의 지위를 확보한 부시 대통령의 눈에 비치는 김 위원장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감히 협상을 하자고 덤비는 주제넘고 시건방진 인물일 뿐이다.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아야 할 대상이다.
우리정부는 북한을 궁지에 몰지말고 체면을 세워줘야 북미대화가 가능하고 이에 맞물려 남북대화도 탄력이 붙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공화당 행정부의 한국 데스크들은 한국정부의 대북 접근은 동양의 유교적 관습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저한 상호주의와 게임의 룰에 입각한 냉엄한 협상테이블에서는 북한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입장은 지난달 31일 있었던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 대사의 강연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허바드 대사는 “미국식 접근방식과 아시아적 방식은 분명히 다르다”면서 “현안이 있을 때 미국은 실용적(Pragmatic)이고 직설적(Talking Straightly)으로 (상대를) 다루며 여기에 체면을 살리는 방식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허바드대사의 이 발언은 김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북미대화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의 체면을 살려줄 필요도 있다”고 말한 대목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미 국무성의 리처드 바우처 대변인은 허바드 대사의 발언이 미정부의 공식입장이라고 확인했다.
김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백악관에서 가진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회의감(Skepticism)을 가지고 있다”고 한 말이 확대 해석돼 곤욕을 치른바 있다.
부시 대통령의 이 발언은 지난해 상반기 내내 남북관계를 괴롭혔고 하반기 들어서야 미국정부의 대북대화 방침 발표가 나오면서 겨우 파문이 수습됐다.
부시에 제시할 해법은…
김 대통령은 19일 방한하는 부시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갖는다.
김 대통령과 우리 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자세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직시해야 설득력있는 해법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자세는 옳고 그르냐를 떠나 김대중 정부에는 극복해야 할 과제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는 김대중 정부의 치적과 직결된다.
김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햇볕정책의 성공은 원만한 북미관계를 절대로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어떤 대북 해법을 제시하고 부시 대통령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병규ㆍ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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