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로부터 기가 막히는 사연을 들었습니다.친구가 지난해 아버지를 잃고 나서 처음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갑작스레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친구는 상을 치르기 위해 회사에 휴가 신청을 냈습니다.
당연히 1주일을 예상했지요. 하지만 회사에서는 사흘 휴가만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혼한 여자의 친정 부모상은 사흘뿐이라면서요.
간신히 부서장의 양해를 구해 연차 휴가를 붙여 일주일 상을 치르고 온 그 친구는 또 한번 놀라지않을 수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지급한 부조금이 자신이 알고 있는 액수의 50%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역시 같았습니다.
다혈질인 제 친구는 회사 관계자를 찾아 갔습니다.
결혼한 남자는 어떤지 물으니 부모상은 일주일 휴가에 100% 부조금, 장인장 모상은 사흘에 50%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직원의 부모는 사위 몫을 더하더라고 남자 직원 부모의 50%밖에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돈은 그렇다 치고 사흘 만에 어떻게 부모상을 치르느냐고 따져 묻는 친구에게 회사 관계자가 한 말이더욱 걸작입니다.
“결혼한 여자에게 부모는 시부모뿐이다”라고.
제 친구의 회사가 유별난 것이 아닙니다.
노조가 없는 기업의 상당수에서 오래전에 만들어진 이런 불합리한 관행이 버젓이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나마 점차 비슷한 대우가 이루어지다가 IMF 이후 경기가 악화되면서 급격하게 과거로 회귀했습니다.
여직원의 처우 개선 요구가 대부분 그러하듯, 누군가 회사 최고위 간부에게 진정이라도 하려면 주위에서는 “사표쓸 각오가 아니면 말하지 말라”는 말만 듣게 된다고 합니다.
정말 결혼한 여자에게는 자신을 길러준 부모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남편의 부모가 새 부모가 되어야 하는 걸까요?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처가와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 “시집가면 그 집 귀신이 된다”는 말을 그저 예전의 구태의연한 속담 정도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은 변하는데 제도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한 말입니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