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도부의 잇따른 대북 강경발언으로 한미간의 거리가 크게 벌어진 가운데 이뤄진 한승수(韓昇洙) 외교장관의 경질은 ‘예정된 수순’ 이었지만 적지 않은 함의를 지닌다.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대북 발언으로 한미관계가 껄끄러워진 상황에서 한 장관의 교체가대미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성홍(崔成泓) 외교차관의 장관기용으로 현 외교안보팀이 가장 실무적인 진용을 갖춘 점도 주목된다. 난조를 보이고 있는 대미 외교, 소강상태인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풀어가겠다는 의지로 받아들여진다.
■외교장관 교체배경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의중과는 무관하게 한 장관경질에 문책의 의미가 포함됐는지, 또 대미 메시지가 스며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쉽게 해소될 것 같지 않다.
정부는 한 장관 교체가 1ㆍ29 개각당시 검토됐으나 한 장관의 방미로 순연된 사안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정치인 배제원칙이 적용된 1ㆍ29 개각 시 이상주(李相周)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을 통해 “한 장관이 돌아오면 (교체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교체를 시사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한 장관이 한미 외무장관회담을 위해 방미 중이라는 점을 감안, “한장관 교체여부는 논외의 사항”이라며 애써 무마를 시도하기도 했다.
한 장관이 미니 정당인 민국당 소속이어서 정치적으로 별문제가 없다는 유임 의견도 만만치 않았으나, 정치인 배제라는 큰 그림, 유엔총회의장 겸직 부담, 한 장관 특유의 개인플레이 등이 교체 배경으로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한 장관 교체를 둘러싸고 구구한 해석이 뒤 따르는 것은 현재 노정된 한미간의 대북 인식차가 그만큼 깊기 때문이다.
한 장관이 뉴욕과 워싱턴에 머무르던 당시 부시대통령은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을 ‘악(惡)의 축(軸)’으로 표현했고, 1일 한미 외무장관 회담 후에도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등의 강경 발언은 잦아들지 않았다.
외교부가 연두교서에 포함될 내용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처하는 과정에서 미숙했다는 지적도 도마 위에 올랐다.
따라서 문책성 경질이라는 해석이 나오게 됐고, 한 발 더나아가 이번 인사에 미국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불만이 함축돼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다.
■새 외교안보팀 진용과 대미외교
1ㆍ29 개각으로 외교안보팀에 합류한 정세현(丁世鉉) 통일부 장관, 최성홍 장관, 임성준(任晟準)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전문성을 갖춘 실무진이다.
김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해 이들을십분 활용, 남북문제와 대미관계의 격랑을 헤쳐나가야 한다. 외교안보팀의 첫 시험대는 20일 서울에서 있을 한미 정상회담이다.
부시 대통령의 방한으로 한미간의 인식차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북미대화 국면이 조성될 수 있을지 여부가 새 진용의 성패를 좌우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한미간의 대북 인식차를 조율하기는 쉽지 않다.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김 대통령으로서는 보장 없는 한미간의 의견조율에 의지하기보다는 남북대화에 중점을 둘 가능성이크다.
이 경우 김 대통령의 기본 자세가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적 모양새를 보일 개연성이 크다.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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