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애들 영특한 건지, 징그러운 건지, 원….” 초등학교 6학년생인 윤진이의 엄마 강명희(42 서울 광진구 자양동)씨는 최근 딸아이가 들려준 ‘초등생 계모임’ 얘기를 듣곤 말문을 잊었다.하루는 윤진이가 유명 외제브랜드 옷을 사 입고 들어 왔다. “사달라고 졸라도 안 사줬더니 혹시 나쁜 짓을 해서 사 입은 것이 아닌가”하고 덜컥 겁이 나 다그쳤더니 딸 아이는 충격적인 얘기를 털어 놨다.
‘초등생 계모임’의 인원은 보통 7~8명. 방식도 어른들이 하는 계와 똑 같다. 1주일에 한번 모여 돈을 걷고 순서를 정해 한 사람씩 모아진 돈으로 물건을 구입한다. 여기에도 규칙이 있다. 계를 만들기 전에 사고자 하는 물건을 명확히 정하고 돈을 모으면 반드시 그 물건만 산다는 것이다. 신발계, 콘서트계 등 2개의 계를 더 들고 있는 윤진이는 “같은 것을 좋아하는 애들끼리 친구도 될 수 있고 부모님에게 손 벌리지 않고 원하는 물건도 살 수 있어 그야 말고 1석2조 아닌가요”라며 어른스럽게 반문했다.
명품 신드롬이 계모임까지 성행할 정도로 초등학생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초등생 계모임’은 서울의 경우 강남ㆍ북을 가리지 않고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계를 통해 구입하는 품목도 폴로 등 10만~20만원대 티셔츠, 20만원대를 호가하는 나이키신발, 노티카 등 30만원 점퍼 등 다양하다. 계모임때 마다 내는 돈은 1만~3만원정도. 초등학생으로서는 적지 않은 금액이다.
서울 노원구의 S초등학교 정모 교사는 “반 아이들 5명이 똑 같은 옷을 입어 이유를 물었더니 ‘계모임으로 샀다’고 했다”며 “주로 부모님이 선뜻 사주기 어려운 브랜드를 입고 싶어 계를 만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 교사가 확인한 이 학교 5학년의 계모임 숫자만 20여개에 이르고 주로 옷가 신발 등을 사기 위한 모임이었다.
‘초등생 계모임’이 ‘지향’하는 목적도 강남ㆍ북이 다소 차이를 보인다. 강북지역 등은 주로 비싼 옷가지를 사기 위해 계를 만드는 반면, 강남지역은 게임기 등을 사려는 모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강남 B초등학교 4년 권모군은 “엄마가 다른 건 다 사주시는데 게임기는 더 이상 안 사줘 친구 4명과 모임을 만들어 오락기를 사서 돌려 쓰고 있다”며 “새로운 게임이 나올 때 마다 돈을 모아 사기로 했다”고 전했다.
서울 서초동 C초등교의 한 교사는 “외제 명품이면 넋을 잃는 어른들의 꼴불견이 아이들까지 전염시키고 있다”며 “계모임이 천진난만하게 뛰어놀아야 할 어린이들을 ‘돈이면 다’라는 생각에 빠지게하지 않을 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기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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