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코, 프라이드, 아반떼, 쏘나타, 그랜저, 체어맨, 벤츠, 아우디, BMW…6,200여평 되는 전시장엔 온갖 차종의 차량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잔뜩 광을 낸 차량위로 날선 겨울햇살이 쏟아지면서 전시장은 빛과 색깔의 잔치로 눈이 부실 정도다.
서울도심에서 천호대로를 따라가다 군자교 못미쳐 오른쪽에 자리한 장안평 중고차매매시장.
빛 바랜 붉은 벽돌의 3층짜리 상가 건물 4개 동이 나란히 서있고 그 앞 넓은 광장엔 깨끗이 단장한 2,000여대의 차량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29일 오후 택시에서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40대 남자 몇 명이 몰려왔다. “차를 사시게요?” “어떤차량에 관심이 있으세요” “보험을 싸게 넣어드립니다” 끈질기게 뒤를 따르며 흥정을 걸어온다.
장안평 중고자동차 시장의 유명세에 기대 하루살이를 하는 소위 ‘차잽이’들이다. 대부분 무허가 업소의 브로커들로 낚아챈 손님을 무허가 특정업체에 소개하고 커미션을 받는다. 여름 휴가철을 앞둔 중고차 성수기에는이 같은 차잽이가 수백명에 이른다고 한다.
장안평 시장의 최대 장점은 원스톱(one-stop) 서비스. 소비자가 차량을 선택하면 바로 옆 중랑천변엔 위치한 자동차 정비업소에서 정비를 받을 수 있고 현장에서 이전 등기와 보험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중고차 하면 장안평’, ‘장안평 하면 중고차’로 불렸던 이곳은 많이 빛이 바랬다.
자동차 명의 이전업무를 위해 상가에 마련된 성동구청 교통행정과 출장소 관계자는 “99년도만 해도 이전처리 건수가 하루 60~70건에 달했는데 지금은 30~40건에 불과하다”며 “강남 강서 영등포 등지에 생긴 매매시장과 인터넷이나 생활정보지에 고객을 많이 뺏겼다”고 말했다.
중고차 가격면에서도 인터넷 등에 주도권을 뺏겼다. 예전에는 장안평 시장에서 중고차 가격이 정해졌는데, 이제는 거꾸로다. 실수요자가 인터넷이나 생활정보지를 통해 적절한 시세를 미리 알고 차량을 선택한다. 어쩔 수 없이 그 시세에 맞춰줄 수 밖에 없다는 게 한 상인의 귀띔이다.
장안평 시장의 최근 시세를 보면 아반떼(96년, 오토) 500만원선, EF쏘나타(98년,2.0) 900만원선, 다이너스티(96년) 1,400만~1,500만원선이다.
서울시 허가 1호업체 을지상사(A동 2층) 김성옥(金成沃ㆍ58) 사장은 “엔진 소리만 들어도 차 상태를 알수 있는 베테랑들이 모여있다”며 “신뢰회복과 함께 주차빌딩과 경매장 건설 등을 통해 첨단 중고차 시장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차를 고를 때 가장 주의할 점은 사고경력 여부. 김 사장은 “큰 사고가 났던 차량은 아무리 정비를 잘해도 한계가 있다”면서 “대낮 역광상태에서 도색상태를 살피면 사고 여부를 알 수 있다”고조언했다.
또 비오는 날이나 너무 추운 날은 엔진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어 피하는 게 좋다고 한다.
허가업소를 이용하는 것도 피해를 미리 방지할 수 있는 길이다. 호객하는 ‘차잽이’들에게 빠지거나 무허가업소를 통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환불이나 손해배상처리가 불가능하다.
‘장안평’은 조선조 나라의 말을 기르던 ‘목마장(牧馬場)’이 있던 곳으로 목장 안쪽의 벌판이라 하여 ‘마장안벌’로 불리다가 ‘장안벌’로 굳어졌다.
말 대신 차량이 넓은 벌판을 뒤덮게 된것은 1979년 서울시가 도시계획법에 따라 중구 오장동과 퇴계로 등지에 흩어져 있던 업소들에게 시유지를 불하하면서부터. 그때 허가받은 64개 업소가 거대한 중고차 시장을 일궈 오늘에 이르렀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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