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인간을 공부하는 역사가인데도, 정작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힘들 때가 많다.오늘 아침은 어떠했던가. 붐비는 지하철, 어쩔 수 없이 밀착된 사람들의 낯선 체취는 차라리 불쾌의 어둠이 아니었던가.
추상적인 ‘인간’이 아니라, 현실의 구체적인 ‘사람들’을 사랑하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삶에 지쳐 괜스레 사람들이 싫어질 때, 종종 꺼내 드는 책이 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이다. 이를 통해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하기 때문이다.
밀밭의 여우를 생각해 보자. 빵을 먹지 않는 여우에게 본디 밀밭이란 관심 밖의 장소였다.
하지만 어린 왕자를 사랑하고 떠나 보낸 여우는 이제 밀밭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바람에 일렁거리는 밀의 황금빛이 어린 왕자의 금빛 머리칼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우는 바람 부는 밀밭을 지날 때면, 늘 그 속에 파고든다. 그가 보고파서, 그가 그리워서.
여우가 이러는 건 그가 어린 왕자의 유일성을 통감했기 때문이다.
유일성? 장미 화단의 어린 왕자를 떠올려 보자. 맨 처음 장미 꽃밭을 본 그는 울음을 터뜨린다.
세상에 하나뿐일 줄 알았던 장미가 그 곳에 5,000 송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여우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장미’, 즉 자신이 길들이고 자신을 길들인 장미는 오직 한 송이임을 깨닫는다.
사랑의 절정, 깨달음의 정점. 그리하여 화단으로 되돌아간 그는 5,000 장미의 무의미함을 말해주고, 여우와 작별한 후, 뱀에 물려 죽는다.
자신의 장미에게 돌아가기 위해.
사람들에 치일 때, 난 ‘어린 왕자’를 읽는다. 그들 모두의 본래적인 유일성을 깨닫기 위해. 결코 ‘지구 위에 반은 남자, 지구 위에 반은 여자’가 아닌 것을….
김현식 한양대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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