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스 후이징의 '책벌레'18, 19세기 독일의 목사 요한 게오르크 티니우스는 종이 냄새만 맡고도 어떤 인쇄소에서 제작된 책인지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을 사랑했다.
사랑이 지나치면 탐욕이 된다. 광적으로 책을 탐한 끝에 티니우스는 살인을 저지르고 사라져 버렸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를 떠올렸다면 선입관이다.
독일 작가 클라스 후이징(44)의 장편소설 ‘책벌레’(문학동네 발행)는 온몸으로 책의 운명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벌레 목사 티니우스에 관한 오래된 옛 이야기와 티니우스의 흔적을 좇는 20세기의 책벌레 대학생 팔크 라인홀트 이야기가 엇갈리고, 사이사이에 ‘양탄자’라는 제목이 붙은 아홉 개의 장(章)이 끼어 든다.
별난 형식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들은 책을 몇 장 읽다 보면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작가의 분방한 화술에 혀를 내두르게 될 법하다.
책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위장이 뇌로 옮겨졌다. 단어들을 차에 적셔 입에 넣고는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혀로 굴린다. 글자가 씹히면서 머리 속을 불린다.
갓 구입한 빳빳한 새 책은 순결한 처녀 같다. 텍스트를 머리에 넣고 먹어 치우다 보면 책을 조금씩 닳고 바래지만 아내처럼 편안해진다.
그런데 두 남자 ‘책벌레’ 티니우스와 라인홀트가 영혼을 삼키는 책 읽기의 맛을 알아버렸다.
티니우스는 순전히 책을 갖고 싶은 마음에 노파를 죽여 버렸다. 팔크 라인할트는 책 속으로 삼켜져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 책벌레들의 독한 사랑을 묘사하면서 작가는 생각나는 대로 괄호를 쳐서 끼적이고, 독자에게 이러쿵저러쿵 충고하기도 하며, 때로는 빈정거리기까지 한다.
아홉 장의 ‘양탄자’에서는 아예 루소와 칸트, 벤야민, 비트겐슈타인, 카프카, 데리다 등 수많은 글쓰기의 대가들을 끌어들인다.
이들의 입을 빌어 저자는 텍스트를 제대로 읽을 줄 모르는 비평가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글자의 매혹을 알아채지 못하는 독자를 꼬집는다.
곳곳에서 고대와 중세, 현대의 작가와 철학자가 튀어나오고, 여기저기서 찢어온 심오한 경구와 잠언이 쏟아지지만, 소화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요리로 만들어낸 작가의 기술은 탄복할 만하다.
작가는 ‘책 사랑의 실종은 문명 세계의 몰락’이라는 어두운 예언을 내놓지만, 그 예언이 기록된 것이 ‘책’이라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 내리게 된다.
’양탄자’의 여섯번째 장에서 ‘책은 창녀와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책과 창녀는 둘 다 침대로 데려갈 수 있다’ ‘책과 창녀가 맞이한 종말을 본 사람은 드물다. 그들은 퇴락하기 전에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허구한 날 기도하는 늙은 어멈도 젊었을 때는 창녀였다. 오늘날 청소년들의 필독서 중에서 한때 평판이 나빴던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라는 식이다.
작가는 책에 깊숙이 빠지는 것은 창녀의 살 속에 파묻혀 한없이 나른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속삭인다.
어찌 됐든 인류는 맨 처음 사람부터 금단의 열매에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책벌레’의 작가 클라스 후이징 역시 책의 매혹에 취해 글쓰기의 경계를 사뿐히 넘어섰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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