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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史劇은 詐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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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史劇은 詐劇

입력
2002.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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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드라마 열풍이 뜨겁게 불더니 점차 그 역풍이 거세지고 있다.얼마 전 만난 한 출판인은 '여인천하'를 자신의 집에서는 '공상천하'라고 부른다며 호되게 비판했다.'명성황후'도 마찬가지였다.

역사드라마에 대해 토론한 어떤 라디오 프로그램의 한 청취자는 망국으로 이끈 명성황후와 대원군을 미화함으로써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막는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역사전공자인 내 견지에서 두 분의 비판은 너무나 지당한 말씀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비판이 반복된다는 점에 있다. 이는 사극에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뜻도 되지만 문제가 시정되지 않고 있다는 뜻도 된다.

물론 특정 문중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비판이라면 문제지만 내 기억에 문제는 대부분 방송사 쪽에 있었다.

그리고 비판의 주제는 항상 역사관과 사실왜곡에 있었다.

역사관을 놓고 말할 때 '명성황후'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민비를 마치 구국의 화신처럼 그리고 있지만 이는 그녀가 수행했던 실제 역사와는 다른 것이다.

제작진은 '민족사관에 기초한 역사 바로보기와 자긍심 회복'을 주제로 제작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일본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녀의 객관적 해국(害國)행위가 애국으로 둔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오군란 당시 봉기한 민중들이 그녀는 물론 다른 민씨들도 처단하려 해서 민영익(閔泳翊)을 비롯한많은 민씨들이 변장을 하고 황급히 도망가야 할 정도로 민씨 정권은 민중들에게 지탄의 대상이었다.

민씨는 1882년 임오군란 때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청국군을 끌어들였는데 두 번 모두 국내 민중들을 진압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두 번 모두 일본군의 출병으로 연결되었다.

민비가 끌어들인 외세에 의해 조선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두 아는 바이다. 1910년 자결한황현(黃玹)은 『매천야록(梅泉野錄)』에서 민비가 정권을 잡은 고종 11년 이후 궁중의 낭비로 국고가 모두 비어 오영(五營) 군사들의 봉급을 주지 못했다며 임오군란의 책임을 민비의 낭비로 돌렸다. 과거의 역사를 미화한다고 민족사관이 되는 것은 아니며 자긍심이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진정한 자긍심은 불행했던 시대에 대한 진정한 반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여인천하'는 사실왜곡으로 비판 받는다.

왕비 소생의 원자가 후궁 소생의 서자들과 왕세자 책봉시험을 보는 장면이나 신하가 왕비를 쫓아내겠다고 협박하는 장면 등은 신분제 사회에 대한 기본 상식만 있어도 나올 수 없는 장면들이다.

이런 비판의 여파인지 40%대에 달했던 시청률이 20%대로 떨어지자 제작진은 특단의 대책을 마련했다는데 그 대책 자체가 우리 사극의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특단의 대책이란 경빈의 죽음인데 기존 사극에서 볼 수 없던 깜짝쇼를 예고하고 있다고 한다.

방송사 곳곳에 각 프로의 시청률을 대문짝만하게 써 붙여놓은 것은 이 문제가 작가나 PD만의 책임이 아니라 이들을 시청률 전쟁에 내모는 방송사 구조의 문제임을 말해주고 있다.

국민들의 올바른 역사관 형성이 아니라 시청률을 고민하다 보니 제작진은 경빈의 죽음처럼 갈등을극대화해 시청률을 올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역사관과 사실(史實)은 왜곡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해결책은 방송사의 사극 제작구조를 개혁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역사전공자와 시청자의 제도적 참여를 보장해 역사왜곡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시청률에 목숨 거는 방송사 자율에 맡겨 두고 분노만 거듭할 것인가.

이덕일 역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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