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한미투자협정 체결을 앞두고 재정경제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자 영화인 150여명이 최근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기자회견을 갖는 등 스크린쿼터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정부 일각에서는 "한국영화시장 점유율이 40%를 넘어선 만큼 이제 축소할때가 됐다"고 주장하지만, 영화인은 "한국영화가 이제 막 부흥하는 시점에서 스크린쿼터 축소는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찬성-최병일(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1년의 40%에 해당하는 146일간 한국영화 의무상영을 규정하고 있는 한국의 스크린쿼터를 폐지하거나 축소하자는 주장에 대한 반대논리는, 첫째 스크린쿼터제가 현재 국제통상규범에서 엄연히 인정되는 제도라는 것, 둘째 미국 대중문화가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상황에서 자국문화를 보전하는 최소한의 보호장치라는 것으로 압축된다.
스크린쿼터제가 국제통상규범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제도가 국제통상규범에 저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적절한 제도인가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문화적 다양성 확보는 최근 UNESCO선언에서도 천명되었듯이, 인권보장과 생물다양성 확보에 필적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쟁점은 스크린쿼터제만이 과연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인 제도인가하는 점이다. 왜 출판, 가요, 음악, 미술 등 다른 모든 문화산업은 스크린쿼터제 같은 보호장치가 없는 데, 유독 영화산업에만 이러한 제도가 36년 이상 존치되고 있는가?
극장주와 제작·배급사들간의 영화수입 이윤배분방식을 둘러싼 최근의 갈등은 스크린쿼터논쟁의 정작 핵심은 문화적 다양성과 같은 거창한 가치가 아니라 실상은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임을 보여준다.
이제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외국영화의 그것과 맞먹게 되었으니 한국영화의 수입률 배분을 외국영화와 동등하게 해달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스크린쿼터의 축소조차 불가능하다는 일부 영화인들의 주장은 이율배반적이다.
위대한 문화적 가치를 외치며 공익수호천사로 자임해온 이들 역시 사익추구라는 모든 경제인들을 짓누르는 중력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슬픈 영화의 한장면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최근 한국영화의 눈부신 성장은 소재가 개방되고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재능있고 의욕적인 인력들이 영화산업에 진출하고 영화산업에 대한 투자, 기획, 마케팅 강화, 관람환경의 개선이라는 복합적인 요인들의 상승작용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요인들은 한국영화가 이제는 과거와 구별되는 새로운 환경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을 스크린 쿼터가 축소되면 꺼져버릴 거품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너무나 자신을 비하하는 셈이다.
스크린 쿼터에 한국영화의 존립을 의존해야 할 만큼, 한국영화는 취약하지 않다.
물론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50% 성과의 이면에는 소규모 예산 극영화들의 좌절의 그늘이 있다.
만약 이러한 영화들의 존립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정책목표라면, 모든 국산영화를 무차별적으로 대우하는 스크린쿼터는 너무나 비효율적인 정책수단이다.
이들 영화에게 직접적 세제혜택, 보조금 지급 등 제작환경 개선이나 전용관 건립 등이 더 효율적인 정책이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거나 폐지하자는 주장은 사유재산권을 존중하고 개방과 경쟁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식의 성숙함과 자신감의 표현이다.
▶반대-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2월 19일 부시 방한을 앞두고 주무부서도 아닌 재정경제부와 일부 경제관료들이 스크린쿼터 문제를 갑자기 쟁점화하고 있다.
장기적이고 입체적 협의가 필요한 이 문제를 갑자기 내놓은 이들의 주장은 문화관광부와 국회의 반대로 현실성이 없는데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근거도 없다.
첫째, 시장점유율 40%를 달성했으므로 쿼터가 무의미하다고 하나, 만일 40% 달성이 영화산업 안정화 지표로 의미를 가지려면 장기간(5년 정도)에 걸친 평균지표라야 한다.
하지만 우리 영화는 지난해 처음으로 몇 편의 '블록버스터'에 힘입어 40% 선을 넘었을 뿐이다.
게다가 현재한국영화산업은 스크린쿼터제 이외에 투자조합 구성이라는 필요조건만 확보한 상태로 걸음마 단계다.
실제적 영화산업 안정화를 위해서는 통합전산망, 제작환경개선, 부율개선, 저예산영화 활성화, 영상자료실 구축 등 할 일이 태산 같다.
이런 십 수 가지 필요조건이 마련되려면 상당기간이 필요한 데 겨우 두 개조건을 마련해 놓고 그 중 하나를 축소하자니 웃기는 노릇이다.
둘째, 스크린쿼터제는 한국영화 발전의 걸림돌이라는 경제 관료들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스크린쿼터 일수를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지킨 지난 3년간 한국영화는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그에 반해 스크린쿼터제가 없는 국가들은 계속 고전하고 있어 쿼터제의 실효성이 세계적 공감을 얻고 있다.
이에 46개국 문화부문 장관들이 참여하는 '문화정책에 관한 국제네트워크'(INCP)와 52개국의 300여개 문화단체들이 참여하는 '문화다양성을 위한 국제네트워크'(INCD), 유엔의 유네스코 총회 등은 한국의 스크린쿼터제를 강력지지하고 있고, 한국으로부터 배우자는 구호가 세계영화계에 퍼지고 있다. 또 스크린쿼터제는 수입규제 같은 '신쇄국정책'이 아니라 세계영화시장의 85%를 독점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직배를 허용하는 가운데 규모가 작은 한국영화의 최소 생존을 위해 106일(29.5%)을 의무상영일수로 규정하는 제도다.
즉 쇄국이냐 개방이냐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개방속의 공존'을 모색하는 독점방지용 공정거래제도다.
그러므로 쿼터 축소 여부는 할리우드의 세계시장 독점율의 축소 여부에 달려 있다.
셋째, 그에 반해 쌍무투자협정은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어 왔다.
그간 미국과 양자간협정을 맺은 40여개국은 구동구권이나 최빈국이다.
OECD 국가 중 어느 곳도 미국과 양자간 협정을 맺지 않는 이유는 미국측이 요구하는 투자협정조건이 투기자본ㆍ거대자본 보호위주로 짜여져 있어 종속화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1966년 도입됐던 스크린 쿼터제는 사실 '사문화'의 길을 걷다가 1993년 민간감시기구가 발족하면서 정착해갔다.
현재 한국영화를 연간 146일 동안 의무적으로 상영토록 규정하고있으며, 문화관광부장관 재량권 등으로 40일을 줄일 수 있다.
■왜 다시 논란인가
한국영화사업을 보호하기 위해 1966년 도입됐던 스크린 쿼터제는 사실 '사문화'의 길을 걷다가 1993년 민감감시기구가 발족하면서 정해갔다.
현재 한국영화를 연간 146일동안 의무적으로 상영토록 규정하고 있으며, 문화관광부장관 재량권 등으로 40일을 줄일 수 있다.
▲논란과정
스크린쿼터 존폐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1998년 한미투자협정 체결 움직임에서 였다.
IMF 환란 직후인 1998년 외자 유치를 위해 우리측의 제의로 시작된 한미투자협정협상에서 미국측이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온 것.
영화계는 당시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20%대에 머물었던 상황에서 강력 반발, 98년 광화문 영정시위, 99년 6월 삭발시위 등 대대적인 항의시위를 벌였다.
국회도 1999년 1월, 2000년 12월 두 차례에 걸쳐 '스크린쿼터현행유지 촉구 결의안'을 채택해 힘을 실었다.
한미투자협정도 결국 스크린쿼터에 관한 의견 조율에 실패, 계속 지연돼 왔다.
▲시장점유율 40%
논란 과정에서 중요한 잣대가 됐던 것은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 40%.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나 국회 결의안 모두 한국영화가 시장점유율 40%가 될 때까지 스크린쿼터제를 유지한다는 것이었고, 이를 영화인들도 받아들였다.
지난해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서울기준으로 46.1%. 한국영화의 엄청난 성공은 스크린쿼터 문제에부메랑으로 돌아와, 논란 재연의 불씨가 되고 있다.
▲외국사례
각국은 자국 영화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자국 영상물을 일정 비율 이상 방송하도록 규정한 방송쿼터제나 융자, 보조금, 세제 혜택 등의 제작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는 외화수입 자체를 규제하는 수입쿼터제를 시행하고 있다.
스크린쿼터제를 강력히 시행, 성공적인 사례로 기록된 대표적 국가가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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