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야 리사 '인스톨'‘아직 술도 마실 줄 모르고,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섹스도 체험해 보지 못한 열일곱 살’.
입시 시험에 시달리던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 도모코가 어느날 학교에 가지않기로 결심했다.
초등학생과 함께 아르바이트로 ‘섹스 채팅’이라는 걸 시작했다. 채팅방의 주인 노릇을 하면서 익명의 손님과 섹시한 문자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무언가를 깨닫고 조금 더 자라면서, 한 달 간의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한다.
평범한 10대의 작은 일탈과 반란이다. 성장을 위해 힘든 오르막길을 가는 게 아니라 낮은 과속방지턱을 넘는 것 같다.
17세 여고생 와타야 리사가 쓴 소설 ‘인스톨’(현대문학북스 발행)은 그러나 일본의 문학잡지 ‘문예’에서 주관하는 제38회(2001년) 문예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고등학생의 작품답게 문장은 짧고 발랄하며, 그 나이 또래의 고민이 들어 있지만 무겁지는 않다. 더욱이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는 소설의 제목에 그대로 담겨 있다.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고장이 나면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해야(인스톨, install) 한다.
‘도대체 내가 어떤 인간이 될 수 있을까’라는 고3의 막연한 두려움에 감염돼 삶이 고장 났다.
멈춰선 생활을 인스톨하기 위한 방식은 섹스 채팅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외설적인 것이다.
서로 거짓인 줄 알면서도 잠깐의 말초적인 즐거움을 위해 인터넷으로 수다를 떨다가 우연히 이런 진실을 만났다.
‘죽어도 타인의 장난감 노릇은 하지 마라.’ 그때 삶이 인스톨된다. 어찌 됐든 열 일곱 살 무렵에는 높든 낮든 장애물을 넘게 되는 법이다.
일본의 한 문학평론가는 ‘인스톨’을 두고 이렇게 평했다.
“굳이 문학성을 염두에 두지 않아도 술술 읽히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의 본질을 어떤 수사보다도 잘 드러내는 표현이 아닐까.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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