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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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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 공공의 적

입력
2002.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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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반장: “강력반 새끼들은 안 그래도 피곤한 새끼들이야. 좀 받아 먹어도 돼!”끈끈이: “그러면 안 되죠. 민주경찰이.”

1993년 ‘투캅스’에서 형사를 대놓고 희롱한 것이 미안해서 였을까. 강우석 감독은 새 영화 ‘공공의 적’에서 주인공 설경구를 졸졸 따라다니는 감찰반에게 이렇게 내뱉는다. 물론 반장 입을 통해서.

흔히 청렴한 사람에게 은근히 수작을 붙일 때 하는 상투적인 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한다고.”(그런데 고기가 살면 다 물 좋은 거는 맞나. 정수장 물에서 고기가 나오면 어떻게 되지?) 이런 우회적 ‘설득’보다 강력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력반은 좀 먹어도 된다’는 표현은 영화적 맥락으로 보면 상당히 시원한 쾌감을 준다.

아마 이런 심리일 것이다. “그래 잘났다고 남의 뒤 캐는 놈들, 그런 것들의 생리는 내가 더 잘 안다. 너희는 누군가의 약점을 끊임없이 캐내지만 그것으로 결국은 네 자신의 배를 채우려 하겠지. 사리사욕에 눈먼 자보다 더 혐오스런 것은 구악보다 더 구린내나는 신악의 출현.”

살면서 한 두 번 직간접적으로 이런 경험을 해 본 사람이라면, 희한하게도 ‘구악적인’ 대사에 가슴이 시원해진다.

감독의 ‘구악적’ 사상이 드러나는 대목 하나 더.

강형사: “폭력 및 상습적인 금품 갈취, 공무집행 방해로 1년 썩을래, 절도로 6개월 썩을래?”

안수: “절도로 합시다.” (여기에 더해 반장은 조작 증거의 완성도까지 높여주는 친절함까지 보인다)

그야말로 형사 좋고, 범인 좋은 ‘윈-윈 게임’. 물론 법적으로 따지면야 ‘법질서를 문란케 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 시원한, 혹은 경쾌한 느낌은 무엇일까.

아마 영화에서는 너무 자주 승리하고, 현실에서는 너무 자주 패배하는 ‘정의’를 우리가 아예 잊어버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현실’을 영화에 과감히 수용한 감독의 ‘용단’이 기특해서? 그것도 아니면 그냥 재미 있어서?

감독은 분명 웃음을 가장해 ‘구악적 세계’의 미덕을 강요하는데, (나름대로) 젊다고 생각하는 ‘내’가 웃음이 나는 것은 또 왜?

‘공공의적’이 주는 이 ‘구악의 카타르시스’는 허술한 진담의 세계가 원숙한 농담에 패배한 우리사회를 압축해 보여주는 데서 기인한다. 으악 악몽이다!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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