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값이 떨어지고 있다. 쌀값이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과 6개월만에 평당 5,000∼1만원이 떨어졌다.비교적 중농인 30마지기의 농사를 짓는 농민의 경우 하루아침에 6,000만원의 자산가치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느닷없이 재산가치가 폭락하는 것은 제 살이 떨어져 나가는 것과 다름없다.
4∼5년 내에 쌀시장이 개방되면 논값은 어디까지 떨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논값 하락을 걱정하는 사람은 농민뿐이 아니다.
고향에 땅을 둔 출향인들도 걱정이 태산이다. 그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거나 객지에서 고생하며 고향에 조그만 땅을 마련해 놓은 사람들이다.
땅이 있기에 고향을 한번 더 생각하고, 어렵고 힘들 때 언젠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이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윤모(56)씨의 고민은 이렇다.
윤씨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논 1,200평을 현지 마을주민에게 임대해 주고 매년 5∼6가마의 쌀을 받고 있다.
물론 적자 임대다. 쌀 6가마라 해봐야 연간 96만원 정도다. 논을 팔아 은행에 넣어도 200만원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윤씨는 물려받은 땅인데다 고향쌀을 먹겠다는 생각에 땅을 팔지 않았다. 하지만 윤씨는 최근 마음이 달라졌다. 적당한 사람이 나오면 언제든지 논을 팔 계획이다.
출향인에게 고향 전답이 자산가치가 되는 시대는 가고 있다.
윤씨처럼 고향 전답을 처분하고 싶은 마음은 전염병처럼 확산될지 모른다. 임대차 농민들도 더 이상 남의 땅에 농사짓는 일이 매력적이지 않다.
쌀값이 떨어지면 임대료를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
그러나 고향의 땅이라는 게 자산가치로만 따질 수 있는가. 출향인이 고향에 대한 애착마저 버린다면 농촌은 지금보다 훨씬 빨리 황폐화될게 뻔하다.
팔려고 내놓는 전답이 농사짓는 사람에게 돌아가면 좋겠지만 오히려 영세농의 탈농을 부추길 것이다.
농촌을 살리려면 도시인들이 고향에 대한 애착을 가져야 한다. 고향의 땅은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줄 것이다.
대도시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외국산 쌀이 아무리 싸고 품질이 좋아도, 쌀만은 반드시 고향에서 생산되는 것을 먹으려 한다면 농촌에서 살 농민들이 훨씬 많아진다.
또 주변 사람에게 고향쌀을 선전하고 판매해주면 그게 바로 고향을 지키는 파수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농민들은 올해 설에 쌀을 가득실은 귀경차량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도시로 이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한다.
주희춘·강진신문 편집국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