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만 제시하면1,000만원을 빌려줍니다.”한빛은행이 최근 출시한 신용대출상품 광고문안이다. 상품의 이름은 ‘한빛 베스트론’. 이 은행의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을 통해 ‘걸러낸’ 100여만명의 우수 고객들이 대상인만큼 별도의 증빙서류나 보증없이 신속 간편하게 대출해준다는 게 은행측 설명이다.
대출한도(최고 1,000만원)와 금리(9.21~10.71%)는 고객의 신용도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며, 대출기간은 최장 3년. 돈 빌리는 조건이 담보대출보다는 못하지만, 제2금융권이나 사채시장에 비한다면 ‘파격적’이라할 만하다.
무보증ㆍ무담보 조건을 앞세운 ‘신용대출’이은행가의 핵심테마가 됐다. 경기침체의 여파로 자금운용에 애를 먹고 있는 은행들이 카드사나 캐피탈 등 제2금융권 여신전문기관들의 고유영역으로 간주돼 온 신용대출 시장에서 격전을 벌이고 있다.
대출의 내용도 종전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마이너스 대출이 고작이었지만 요즘엔 클릭 한번이면 돈을 빌릴 수 있는 인터넷 대출부터 변호사나 의사, 약사 등을 타깃으로 한 전문직 신용대출까지 대상 고객의 폭도 넓어졌고, 상품구색도 한결 다양해졌다.
신용대출의 증가는 인터넷 대출의 급성장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금융계에 따르면1월 말 현재 조흥 국민 신한 등 9개 시중은행의 인터넷 대출잔액이 4조원을 넘어섰다. 1999년 신한은행이 인터넷 대출의 원조격인 ‘사이버론’을 선보인 지 불과 2년 만이다.
이들 은행의 인터넷 대출잔액은 2000년 말만 해도 1조2,372억원에 그쳤으나 작년말에는 3조8,974억원으로 1년 동안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말엔 대출잔액이 10조원 대에 육박할 것이라는 게 금융권의 전망이다.
신한 ‘사이버론’의경우 대출신청 건수는 2001년 12월 말 현재 1만 5,934건으로 창구를 통한 대출 신청건수보다 무려 3.3배나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은행 관계자는 “인터넷 대출은 대출 신청에서 심사, 실행 등 모든 대출절차를 클릭만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며 “대출의 간편성과 신속성 때문에 이용고객이 크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시스템(CSS)을 통한 정확한 신용분석이 가능해지면서 상품의 형태도 다양해졌다.최근 각광받는 테마는 의사나 변호사, 변리사, 법무사, 공인노무사, 손해사정인, 관세사, 기술사, 건축사 등 수입원이 안정적인 전문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대출. 이동통신사나 초고속통신망 업체와 제휴, 가입자들에게 신용대출을 해주는 은행도 많다.
서울은행이 011ㆍ017 가입자와 천리안,하나로통신 가입자를 대상으로 휴대폰 간편대출을 시행중이고 한미은행은 매가패스 가입자를 위한 500만원 한도의 신용대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부부사랑 신용대출’ 은 영세상인이나 저소득층 부부가 대상. 기존 거래여부와 상관없이 연대보증인을 세우지 않고도 무보증으로 대출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부부가 공동명의로 가구당 1,000만원까지 빌릴 수 있다.
아파트 소유자도 신용대출의 주요고객. 외환은행은 자기명의로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보증없이 최고 5,0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아파트 소유자 앞 신용대출’ 상품을 최근 출시했다. 만 25~65세로 매매 하한가 1억원 이상의 아파트를 보유중인 사람이 대상이다.
제2금융권도 수성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신용카드업계는 방대한 고객정보와 신용분석 노하우를 토대로 현금서비스 매출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추세이고, 캐피털 업계는 500만원 안팎의 소액대출 시장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대출전용카드를 앞세워 세몰이를 본격화하고 있다.
종전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금리 차별화경쟁도 치열하다. 현대캐피탈은 드림론패스의대출기간을 10개월 고정에서 1, 3, 6, 10개월로 세분화하고 금리도 차등적용하기로 했다. 특히 전화(1544-2114)나 인터넷(www.capitalo.co.kr)을 이용할 경우 최고 8.1% 포인트의 금리를 깎아준다.
예컨대 기존에 17%를 적용받아온 고객의 경우 ARS나 인터넷을 이용해 드림론패스 대출금을인출할 경우 1개월은 8.9%, 3개월은 13.9%, 6개월은 15.9%, 10개월은 종전대로 17%의 금리를 적용한다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
2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신용대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고객확보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며 “앞으론 정밀한 신용평가 인프라를 토대로 누가 얼마나 빨리 새로운 틈새시장을 발굴, 선점하느냐에 따라 금융기관간 우열이 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변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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