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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기관장들의 '죽은자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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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기관장들의 '죽은자 탓'

입력
2002.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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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착하게 비상구로 탈출했으면 대형참사는 없었을 거예요.""쇠창살도 없고, 감금도 없었어요…"

29일 오후 군산시청 기자실. 15명의 사상자를 낸 전북 군산시 개복동 윤락가 화재사건 직후 군산시가 자청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여성단체 회원들은 분노의 눈물을 또 한번 흘렸다.

사건의 전후를 설명하기 위해 기자회견장에 나온 강근호(姜根鎬) 군산시장, 이재준(李才濬) 군산소방서장 등 기관장들이 하나같이 '죽은 자의 잘못'만을 소리높였기 때문이다.

경찰 조사가 나오기도 전에 기관장들이 뱉은 말들은 말 그대로 '책임 회피'의 극치를 이뤘다.

"잠이 덜 깬 종업원들의 실수였어요."

"대명동 윤락녀 사망사고(2000년9월 발생)와는 달라요."

'해당기관 책임론'의 싹을 없애려는 듯 도매뱀 꼬리 자르듯 발뺌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유종근(柳鍾根) 전북지사는 이날 오후 늦게 군산시청 대책본부에 나타나 "취중이라도 비상탈출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반복 훈련을 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해 여성단체 회원들의 말문을 잃게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그런 것(성매매 특별법 제정)은 쉽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유지사의 선거유세도 뒤따랐다.

"해도 너무 하네요. 대명동 사건 이후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고, 불쌍한 여자들이 또 비명에 갔는 데."

회원들의 울분과 분노가 빗발쳤지만, 기관장들의 발뺌은 계속됐다.

30일 이번 화재에서 종업원들이 감금상태에 놓여 인명피해가 컸다는 경찰의 잠정 수사결론이 나온 이후 기관장들은 말문을 닫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 표를 던졌던 산 자들은 두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최수학 사회부 기자

s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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