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주말드라마 ‘여우와 솜사탕’(토ㆍ일요일 오후 7시55분, 극본 김보영, 연출 정인)은 방영 전부터 1992년 김수현 드라마의 ‘사랑이 뭐길래’와 흡사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우선 여고 때부터 앙숙이었던 동창 말숙(고두심)과 구자(이경진)의 관계설정부터 심상치 않았다. 봉건적인 독재형의 남편 진석(백일섭)에게 눌려사는 말숙과 남편 국민(이영하)에게 못할말 없이 집안을 좌지우지하는 구자는 ‘사랑이 뭐길래’의 김혜자와 윤여정의 판박이.
여기에 봉건적 가정에서 자란 아들 강철(유준상)과 자유분방하게 자란 딸 선녀(소유진)가 엄마 세대의 반목을 딛고 결혼하는 점 또한 최민수, 하희라를 빼다박았다.
상반된 환경의 두 가정의 만남과 화해의 구도자체가 비슷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제작진은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구도는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구도 뿐만 아니라 ‘사랑이 뭐길래’의 아우라(Auraㆍ 분위기)까지 차용했다는 인상이 짙다. 특히 말숙 역의 고두심은 대발이 엄마 김혜자의 또다른 버젼이다. 구자네 집에 마실을 다녀오다 남편으로부터 “어디를 팔락거리며 돌아다니냐”고 닦달을 당해도 아무말 못한다.
남편에게 당하고 자식에게 신세한탄하는 모습이 대발이 엄마같다.
상대에 대한 배려없이 툭툭 내던지는 독설에 가까운 대사 역시 새롭지 않다.
결혼반대에 단식으로 맞서다 몰래 집을 빠져 나온 선녀는 강철의 집을 찾아가고, 그런 선녀를 돌려보내려는 말숙은 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선녀에게 “쥐어 뜯고 싶다”고 말한다.
선녀도 만만치 않다. “내 새끼 거두기도 힘들다”는 말숙에게 “저 어머니새끼 할게요”라고 맞받아 친다.
단막극만을 써오다가 처음 장편 드라마를 쓰는 작가 김보영은 코믹터치를 가미하면서 인물을 보다 희화화했다.
특히 말숙 부부, 강철의 캐릭터의 화화는 심하다. 젊었을 때 말숙이 국민과 심상치않은 관계였음을 눈치챈 진석이 사실을 털어놓으라며 말숙을 끌고가자 강철은 엄마 편을 드느라고 말숙을 끌어당기다가 갑자기 “미안하다”며 손을 놓아버린다.
온 가족이 마당에 나동그라지는, 코미디프로그램에서도 보기드문 슬랩스틱이 펼쳐진다.
‘사랑이 뭐길래’를 연상시키는 ‘여우와 솜사탕’은 단순명료하면서도 자극적인 것을 선호하는 대중의 기호에 영합하고 있다.
어쩌면 김수현 드라마에 열광했던 여성시청자들의 ‘향수’를 자극해 인기를 얻어보겠다는 계산이 숨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옛날 드라마를 뛰어넘을 만큼 구성이나 연기가 치밀하지 못하고, 2002년에 어울리는 정서나 감각도 갖지 못했다.
그렇다고 김수현에 대한 오마쥬(숭배)도 아닌 어설픈 모방. 작가의 한계일까, 방송의 오만일까.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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