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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슨 최종부도 충격…재벌흉내내다 '벤처신화' 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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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슨 최종부도 충격…재벌흉내내다 '벤처신화' 와르르

입력
2002.0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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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벤처 연방’을 꿈꿀 만큼 수많은 계열사와 투자사를 거느렸던 국내 벤처신화의 대표주자인 메디슨이 무리한 투자가 자초한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침몰했다.핵심사업에 주력하지 못하고 빚을 얻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다 부도난 대기업의 전철을 그대로 밟은 셈이다.

1세대 벤처기업인으로 꼽히는 이민화(李珉和ㆍ49) 전 회장이 1985년 의료기기 전문생산업체로 설립한 메디슨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3차원 초음파 진단기 덕분에 승승장구하며 23개 계열사와 40여개 투자사를 거느린 ‘대기업형’ 벤처로 군림하게 된다. 덕분에 1996년 코스닥에등록한 주식의 시가총액이 3조원을 웃돌기도 했다.

그러나 사업 다각화라는 명목으로 전공인 의료기기 개발과는 상관이 없는 사이버키스트(온라인교육),한글과컴퓨터(소프트웨어개발), 벤처캐피털 등 여러 분야에 걸쳐 800억원이 넘는 과도한 투자를 하면서 2000년 하반기부터 현금부족에 시달려 왔다.

여기에 경기침체와 벤처거품론이 불거진 후 국내외 판매처로부터 제품 판매대금의 회수가 지연되고 재고가 쌓이면서 부담은 가중되기 시작했다.

그는 현금부족이 표면에 드러난 지난해 10월부터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현금확보를위한 자구책을 찾기 시작했다.

보유하고 있던 무한기술투자, 한글과컴퓨터, 비트컴퓨터의 주식은 물론이고 계열사인 메디페이스, 메리디안, 프로소닉,써텍의 지분도 매각했다. 또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사옥도 다른 벤처기업에 약 310억원을 받고 처분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난해말 2,500억원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 매출인 2,047억원을 상회하는 액수다.

특히 지난해 오스트리아에 설립한 현지법인인 크레츠테크닉의 매각대금이 제대로 유입되지 않으면서 ‘벤처 연방’에 심각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메디슨은 크레츠테크닉을 제네럴 일렉트릭에 약 1,100억원(1억유로)을 받고 매각해 부채비율을 407%에서 200%이하로 줄일 계획이었으나 현지 법인의 채권, 채무를상계하면서 상당액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회사가 어렵다는 소문이 나면서 기업어음(CP)의 만기도래기간도 3개월,1개월로 짧아졌고 이를 메꾸기 위해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단기성 부채를 늘린 끝에 빚잔치 속에 벤처신화를 마감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도 이 전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은 각자 보유한 주식을 장내에서 대량매각한 것으로 드러나 투자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이 전회장의 경우 지난해 말까지 모두 5차례에 걸쳐 약 50만주 이상의 주식을 매각했으며 이승우사장도 이달 10일에 2만5,000주를 장내 매각했다.

이에 따라 지분도 이 전회장의 경우 3%, 이 사장은 1.18%로 각각 낮아졌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이민화 前회장은 누구인가

메디슨의 이민화 전회장은 국내 벤처기업사의 한 획을 그으며 영광과 나락을 모두 경험한 장본인이다.

서울 중앙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온 그는 1985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의료장비인 초음파 진단기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독립, 의료기기 전문벤처기업인 메디슨을 설립했다.

이후 그는 초음파 진단기를 독자개발, 외국업체가 독점하던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으며 98년엔 세계 최초로 3차원 초음파 진단기를 개발해 성가를 높였다.

이 전회장은 특히 95년 벤처기업협회를 발족시켜 회장을 맡으면서 국내 벤처산업을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벤처기업 발전을 위해 벤처기업 특별법과 코스닥 등록법 등 벤처정책 입안에 참여했으며 벤처빌딩, 인큐베이팅, 실험실창업제도, 주식옵션 등 당시로는 생소한 각종 경영기법들을 도입해 화제가 됐다.

이 전회장은 이 같은 공로로 99년에 아시아위크지의 ‘아시아의 밀레니엄리더 20인’, 2000년에는 비즈니스위크지의 ‘아시아스타 50인’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공로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업을 다각화한다”며 23개 계열사와 40여개 업체에 800여억원을 투자하는 등 ‘외도’의유혹을 이겨내지 못했고 결국 2,500억원의 부채까지 지고 애지중지한 모기업의 부도라는 종말을 맞게 됐다.

그는 또 직선적인 성격 때문에 주변인물과 자주 충돌해 적이 많았고, 시장에서 보내는 위기경고도 무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이 전회장은 대기업을 흉내낸 무리한 확장으로 화를 자초한 탓에 국내 벤처산업을 일군 공로는 물론 1세대 벤처기업인의 자존심마저 빛이 바래버렸다”며“1세대 벤처기업인의 한계를 보는 듯해서 씁쓸하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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