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시 7회의 ‘세도(勢道)’가 10년째 계속되고 있다.행시 7회는 공무원 임용초기부터 인재가 많기로 소문난기수지만, 두 정권 10년에 걸쳐 핵심장관을 배출하는 진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7회 시대의 막은 한이헌(韓利憲) 전 경제수석이 열었다. 1992년 김영삼(金泳三) 당시 민자당 대선후보의 ‘경제가정교사’를 맡으면서, 문민정부 초기 최고 경제실세로 군림했다.
한 전 수석이 국회로 진출한후, 문민정부 중반부는 역시 7회인 이석채(李錫采)전 경제수석의 독주시기.
이 전 수석이 한보사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얼마 뒤 새롭게 부상한 ‘7회 스타’는 임창렬(林昌烈) 전 경제부총리다. ‘환란소방수’로 등장한 임 전 부총리는 정권을 넘겨가며, 경기 도지사로 선출됐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 7회의 명맥은 이기호(李起浩) 전 경제수석으로 이어졌다. 한때 한이헌, 이석채씨와 함께 ‘기획원 트로이카’로불리웠던 이 전 수석은 문민정부 시절 지역성에 밀려 외곽을 맴돌았지만, 현 정부 출범후 최장수 경제수석이 됐다.
이 전 수석의 낙마와 함께 7회 시대도 끝나는가 싶었지만, 파워부처인 기획예산처에 장승우(張丞玗) 장관이 임명되면서 그 맥은 또다시 계속되고 있다. 황두연(黃斗淵) 통상교섭본부장도 7회 출신이다.
이성철기자
sc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