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축구의 화려한 부활이냐, 끝을 모르는 추락이냐.’2002 한일 월드컵축구대회에 쏠리는 전세계 축구팬들의 최대 관심사 중의 하나는 바로 프랑스 월드컵 이후 비틀거리고 있는 브라질축구의 부활 여부이다.
월드컵 본선에 한번도 빠짐없이 출전한 유일한 나라(17회), 월드컵 사상 역대 최다인 4회 우승, 월드컵 통산 성적(53승14무13패)1위 등 역대 기록만으로 보면 브라질은 올 월드컵에서도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
▼추락한 삼바 축구
하지만 브라질 축구는 프랑스 월드컵에서 아깝게 준우승에 머문 후 지난해 열린 남미 월드컵 예선에서 조 3위로 간신히 본선 진출티켓을 따냈다. 에콰도르 같은 약팀들에게 연패하자 “삼바축구도 이제 한물갔다”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18경기서 무려 6번이나 패하는 9승3무6패의 부끄러운 성적을 기록하는 동안 4명의 감독이 교체됐고 이 사이 그라운드를 들락거린 선수만 59명에 이른다. 오죽했으면 AP 통신이 지난해말 브라질 대표팀을 ‘최악의 축구 팀’으로 선정했을까.
세계 최강 브라질 축구의 추락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호나우두를 비롯한 일부 주전 선수들이 부상에 시달린 데다 유럽 명문클럽에서뛰는 스타들이 제때 합류하지 못해 수준 이하의 조직력을 보인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게다가 예선이 열리는 동안 무려 4명의 감독이 바뀌면서 경기 때마다 대표팀 구성과 포메이션이 바뀌는 등 전술적 혼란도 전력 약화를 부채질 했다.
하지만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간다’는 속담처럼 화려한 개인기를 앞세운 문전돌파와 정교한패스워크, 신기에 가까운 슈팅 솜씨를 자랑하는 삼바축구의 전통이 사라지지 않는 한 브라질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여전히 강력한 우승후보다. 축구 황제 펠레도 지난해 12월 조추첨식에서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 스타들이 건재하고 월드컵이 6개월이나 남은 만큼 브라질은 아직도 우승후보”라고 전망했다.
▼브라질의 희망 호나우두와 히바우두
브라질의 가장 큰 재산은 간판 골잡이 호나우두(25ㆍ인터밀란)를 비롯, 예선서 8골이나 터뜨렸던 히바우두(30ㆍ바르셀로나FC), 바이에른 뮌헨을 세계 클럽 챔피언으로 끌어올린 에우베르에 등 쟁쟁한 스타 플레이어들. 호사가들이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브라질 선수들만모아도 웬만한 실력을 지닌 국가 대표팀 4개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특히 히바우두와 호나우두는 몰락한 명가 재건의 임무를 수행할 선봉장이다. 프랑스 월드컵에서 환상적인 문전 돌파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왼발의 달인’ 히바우두는 경기를 읽는 능력이 탁월해 게임메이커 역할까지 해낸다. 또 2년간 부상의 후유증에서 신음하면서 월드컵 예선에 출전하지 못했던 호나우두도 최근 그라운드에 나서 골을 터뜨리는 등 월드컵 무대를 밟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브라질 축구의 부활은 쟁쟁한 선수들을 하나로 모아 우승으로 향할 수 있도록 목표의식을 갖게 만드는 것에 달려있다. 즉 저마다 탁월한 개인기를 갖춘 신진과 노장들이 팀워크를 이뤄 집중력과 조직력을 갖춘다면 브라질은 이번 월드컵에서 엄청난파괴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게다가 터키, 코스타리카, 중국 등 약팀들과 같은 조에 편성돼 대진 운도 좋은 편이다. 브라질 대표팀 필리페 스콜라리 감독은 최근외신과의 인터뷰에서 “비교적 쉽게 16강에오를 수 있게 됐으며 16강에서 러시아나 벨기에 등과 만나게 되겠지만, 그들은 우리의 상대가 아니다”라며 “2002 월드컵은 브라질 축구의 자존심을 세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축구는 신분상승 수단… 막대한 외화도 벌어들여
브라질의 남자 어린이들은 축구와 더불어 인생을 시작한다. 걸음마를 배우면서부터 공을 차기 시작한 이들에게 가장 귀한 선물은 축구공과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 팀의 유니폼이다. 그래서 “브라질인에게 축구는 곧 삶”이라는 이야기도 있다.브라질 정부가 지난해 전력난으로 제한 송전을 시작하자 “밥은 안 먹어도 좋으니 제발 축구는 보게 해달라”는 아우성이 빗발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최저 임금으로 사는 빈민층이 80%가 넘는 브라질에서 거액을 한꺼번에 손에 쥘 수 있는 축구는 단순한 레포츠의 의미를 넘어서 신분상승의 수단이기도 하다. 브라질 남자 어린이들의 장래희망이 열이면 아홉이 축구 선수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 브라질 축구를 대표하는 스타들 모두 빈민가 출신. 어린이들은 전국적으로 무려 1만3,000여개에 이르는 클럽에서 축구 선수로서 꿈을 키우고 있다.
브라질 축구연맹(CBF)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해외에 진출한 브라질 출신의 선수는 모두 733명으로 이들의 계약금만 약1억1,500만 달러에 이른다. ‘축구 수출’로 한해 무려 1,500억원을 벌어들이는 셈이다. 현재 세계 축구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브라질 출신의선수들은 약 2,000여명이며 이 가운데 대략 1,500여명이 세계적으로 가장 큰 ‘축구 시장’인 유럽 무대에서 뛰고 있다.
지난해 축구 수출로 가장 많은 몸값을 챙긴 선수는 브라질 크루제이루에서 히바우두가 뛰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1,800만 달러를받고 이적한 지오바니. 하지만 브라질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여주던 해외파 선수들은 최근 대표팀 소집에 잘 응하지 않는데다 대표팀 경기에서 지나치게몸을 아끼는 플레이를 펼치는 바람에 곱지 않은 눈총을 받고 있기도 하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브라질 "믿는다 호나우두"
브라질이 우승 고지로 가는 길목에는 강력한 변수가 하나 숨어있다. 바로 ‘축구 천재’ 호나우두(25ㆍ인터밀란)의 부활여부다. 미드필드에서 경기를 풀어주는 플레이메이커의 부재로 월드컵 예선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던 브라질로서는 세계 최고의 골잡이 호나우두가 대표팀에 합류만 한다면 천군만마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른쪽 무릎 인대 부상으로 2년간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던 호나우두는 지난 달 20일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베로나와의 홈경기에서 5분 사이에 연거푸 2골을 집어넣는 집중력을 보이며 팀의 3_0 승리를 이끌었다. 자신의 화려한 부활을 알린 것이다. 이날 경기에서 호나우두가 보인 현란한 드리블과 날카로운 슈팅 솜씨는 전성기와 다름없는 기량이었다는 평가.
하지만 호나우두는 최근 다시 종아리 근육을 다치는 등 부상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월드컵 출전이 아직도 불투명한 상황. 다만 2월1일 열리는 볼리비아와의 평가전 명단에 포함된 점을 미루어 볼 때 월드컵 출전도 가능할 정도로 몸상태가 호전된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호나우두도 자신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최근 “월드컵에 반드시 나올것”이라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박천호기자
tot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