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첫 여성 대변인 탄생…박선숙 공보수석반세기 청와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변인이 탄생했다.
29일 여성 청와대수석비서관 1호이자 최연소 수석비서관이된 박선숙(朴仙淑ㆍ사진)공보수석은 첫 여성 청와대 부대변인, 최연소 1급 여성 비서관의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그가 ‘DJ 사람’이된 햇수는 불과 7년. 경기 포천 출신의 조용한 시골소녀였던 그는 1970년대 후반 대학생(세종대) 때 야학을 하면서 사회 현실에 눈을 떠 운동권에 뛰어들었다.
80년대 들어서는 김근태(金槿泰) 현 민주당 상임고문이 주도한 ‘민청련’과 ‘통일시대 국민회의’에 가담, 본격적인 재야운동을 했다.김 고문이 1995년 지방선거 직전 구 민주당에 합류하자 함께 입당하면서 정계에 입문, 선대위 부대변인에 임명된 게 대언론 일의 시작.
이어 그 해 9월 국민회의창당에 동참, 부대변인을 맡아 이듬 해 15대 총선 선거운동에 나선 DJ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업무 능력을 인정 받게 됐다.
97년 15대대선 때는 언론 앞에 나서는 DJ의 옷차림과 말투까지 세심하게 챙길 정도의 최측근 참모로 활동했다. 그의 활약을 보면서 DJ는 ‘겉은 버드나무 가지처럼 부드러우나 속에는 철사가 들어 있다’고 평했다.
1998년 청와대에 들어가선DJ 내외 모두가 수시로 관저로 부를 정도로 측근이 됐다. 이에 따라 개각 등 현안이 있을 때마다 언론의 집중적인 취재 대상이 됐으나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면서도 중요 고비에선 정확히 흐름을 짚어 줘 기자들로부터 ‘신뢰도 높은 최종 취재원’이란 평을 얻었다.
업무 밖에서의 박 수석은 중2 외아들의 ‘배 나온’몸매에 신경 쓰고 교우관계와 학교생활을 걱정하는 평범한 40대 주부.
“지금까지 해 온 역할을 조금 더 잘하라는 기대와 책임 부여로 생각하고 열심히 하겠다”는 그가 과연 ‘청와대 여성대변인’의 새로운 실험을 성공시킬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노동운동 투사서 장관으로…노동장관 방용석
고졸출신의 노동운동 투사.방용석(57)신임 노동장관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이력이다.1970년대 청계피복 노조 등과 함께 민주노조를 대표하는 원풍모방의 노조 지부장으로서 그가 주도했던 노조투쟁은 노동운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충북 진천 출신인 방장관은 광혜원고를 졸업했으나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대학 진학의 꿈을 접었다. 1970년 원풍모방의 전신인 한국모방에 입사,쥐꼬리만한 월급도 제 때에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에 자극 받아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82년 당국에 의해 원풍모방노조가 해체돼 570여명의조합원들이 강제 귀향조치되는 과정에서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출감후에는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를 만들어 민주노조 활동을 지원했다.
이어 70년대 재야운동을 주도했던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 등과 함께 '통일시대 국민회의'를 만들어 활동하다가 1995년 국민회의에 합류했다.15대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뒤 국회 환경노동위원을 맡아 노동문제에 뛰어난 활약을 펼쳤지만 16대 총선 때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는 지난해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및 명혜회복 추진위로부터 민주화운동 공로자로 인정받았으며 한국가스안정공사 사장을 맡아 경영마인드를 키웠다.
노동투사로서 평가 받았던 그가 노동행정에서도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주목된다.그는 노사 분쟁의 노사 자율해결 원치을 강조한다.
김광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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