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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성수대교와 '게이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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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성수대교와 '게이트'들

입력
2002.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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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가 내려앉고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소식들은 뉴욕특파원 때 미국에서 들었다.다리상판이 내려앉아 가운데가 뚝 잘려 있는 사고현장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던 뉴욕타임스 1면을 보면서 참담하고 창피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미국 친구들은 내 나라에 대해 절망하고 분노하던 마음에 동정을 보내고 위로해주었다.

또 여름휴가 때 아이다호주의 깊은 시골길을 한참 달리다가 들은 지방방송의 정오뉴스.

한국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톱뉴스로 전했을 때 운전하던 손에 맥이탁 풀렸던 기억도 엊그제 같다.

세계 유수의 신문이나 미국 깡촌의 지역언론이 기사들을 그렇게 다룬 것은 그 사고들이 문명국가에서는 있을수 없는 '희귀'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일보의 한 칼럼은 "우리는 지금 마음 속으로 모두 울고있다 "고 썼었다.

부패와 졸속, 인간경시와 배금주의 등 한국병의 모든 증세가 집약된 그 사건들은 우리 스스로를 향해서 울지 않고는 못배기게 했었다. 한국 사람들은 그 때 한국의 붕괴를 맛보았다.

그랬던 우리들에게 지금 다시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있다. 국가기관의 사유화, 사익을 국익시하는 착란적 자기기만, 하루를 못 넘기는 고위공인들의 허언(虛言)과 식언(食言), 그리고 은밀한 ‘한패주의’의 병리들이 사정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2002년형 한국병의 증세들이 총망라된 현장은 어느 덧 ‘청와대 게이트’로 명명되는 중이다.

제대로 정리하기도 어려울 지경이 된 이게이트, 저 게이트들에 거론되는 관련 인물들의 면면을 꼽다 보면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

국가정보원장과 차장, 검찰총장, 법무차관, 서울경찰청장, 그리고 청와대의 전ㆍ현직 수석 비서관들.

여기에 고위 군인들과 장관출신들이 가세하고 중간관료들의 독직도보태진다.

몇 년전의 그 붕괴사고들을 다루었던 미국 신문과방송의 뉴스 기준으로 보면 이 사태역시 문명국가에서는 있을수 없는 희귀한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허탈하고 참담하고 창피하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한가지, 이번에는 눈물이 없다. 눈물 대신배가 된 것은 분노다. 그다리와 백화점의 붕괴는시민 모두가 가담한 범죄라고 할 수 있었다.

때문에 모두가 심하게 자책하고 괴로워했다. 반면 작금의 게이트들은 공중(公衆)과 차단된 공간에서 폐쇄적으로 공모되고 저질러진 특권적범죄이다.

권력을 중심으로 움직인 한줌의 집단에 의해 국가체계가 무너졌다.

국가기강이 유린되고 공권력이 붕괴하는 이 현장에 울이유가 없다. 분노하고 분노할이 유들만이 넘쳐 나기때문이다.

미국에도 지금 비리사건이 한창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비롯해 정권핵심들이 수두룩하게 거론되는 '엔론사건'이다.

사건을 추적하는 미국언론에서는 다소간 여유가 느껴진다. 의혹의 부풀리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점검이 있는가 하면, 이 사건으로 미국에 남는것은 정부와 정치의 추락이고, 그것은 공적손실일 것이라는 우려의 논조도 나온다.

그렇다고 이를 한국의 게이트들에 비교할 구석은 없다. 적어도 초기 백악관의 태도가 달랐고, 공권력이 사건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은 천양지차이다.

한국이 지금할 일은 게이트의 파장을 따지고 앞날을 걱정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철저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우선이다.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알아야 한다. 여기에 개각이나 민심수습은 한가한 말들이다.

조재용 국제부장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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