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 부모나 놀이방 등에 맡기는 보편적인 보육이 아니면 무엇이 있을 수 있나.정부는 국가가 부담하는 공(公)보육을 확충한다는 방침이지만 아직도 놀이방이나 직장탁아시설 등은 태부족이다.
자연주의적인 공동보육을 추구하는 사람들, 부모와 함께 출퇴근할 수 있는 직장보육시설, 시간제로 이용할 수 있는 베이비시터 등을 살펴본다.
■공동육아
경기 고양시 덕양구의 ‘도토리 어린이집’ .
번화가나 아파트단지에서 한 발 벗어난 단독주택으로, 창 밖에는 야산과 논밭이 펼쳐져 있다.
놀이방에 흔한 원색의 플라스틱블록 대신 나무 블록과 의자, 짚으로 만든 주머니 등 ‘자연주의 장난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17가구 21명의 아이들은 마치 시골 순둥이들처럼 자유롭게 뛰어 논다.
딱딱한 교육과정 대신 전래동요를 부르거나 닭싸움 등 옛날 놀이를 하고, 동화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글자를 익혀 간다.
오전에 다섯 명의 교사들과 아이들이 ‘모둠’이라 불리는 회의를 통해 어디로 놀러 나갈지 결정한다.
요즘에는 논바닥에서 얼음을 지치거나 동네 주변 공터에서 달음박질을 한다.
산과 들을 뛰어다닌 덕에 다들 튼튼하다. 먹거리는 모두 유기농 농산물이다. 농산물공동체‘한살림’과 제휴를 맺어 유기농 육류와 곡류, 채소로 식사와 간식을 만들어 준다.
아토피성 피부염 같은 질병은 인스턴트 식품이 한 요인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1998년11월 화정과 원당 등 인근 아파트단지에 사는 주민들 중 아이들을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기르고 싶어하는 부모들이 모였다.
조합비로 280만 원, 가입비 60만 원에 매달 30~35만 원씩 보육비로 낸다.
조합비는 어린이집 건물의 전세비용을 충당하는 명목으로 탈퇴하면 돌려준다. 부모들의 출퇴근시간에 맞춰 오전 9시부터 오후 6~7시까지 문을 연다.
요즘 관심을 끌고 있는 공동육아의 가장 큰 문제는 장소 선정이다. 사는 곳에 가까우면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건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새로집을 짓기도 하는데, 잘 모르고 그린벨트 내에 건물을 지었다가 결국 다른 곳으로 옮긴 시설도 있다.
또 부모의 손이 많이 간다. 도토리집 학부모들은 적어도 한 달에 한두 번 청소를 하거나 아이들이 노는 인근 야산의 풀을 벤다.
나무의자와 미끄럼틀 등을 만들기도 한다. 부모ㆍ교사가 소모임을 갖고 수시로 교육방향에 대해 토론한다.
공동육아전문단체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상임이사 김동진씨는 “공동육아는 세상 바꾸기 운동”이라고 말한다.
보육서비스의 상품화와 주입식 유아교육이 싫어 모인 사람들이니만큼 영재교육이나 학습지 등 인지교육에 집착하는 사람에게는 적당치 않을 수 있다.
현재 서울ㆍ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42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있다.
새로 모임을 꾸리려면 뜻이 맞는 5~6명이 모여 공동육아연구회(02-764-0606)에 연락을 하면 추가 조합원 모집과 건물 선정, 교육 방향 등에 대해 자문을받을 수 있다.
■직장보육시설
삼성 SDS에는 ‘아이들 때문에 직장을 못 옮긴다’는 엄마들이 많다.
대부분 프로그래머인 엄마들은 벤처 바람이 불면서 연봉 2~3배를 주는 조건으로 여러 벤처기업에서 제의를 받았으나 “이곳 아니면 아이를 키울 곳이 없다”며 계속 남았다.
3~7세의 아이들 32명이 세 개의 반에 나뉘어져 있다.
운영시간은 오전 7시30분부터 밤 10시까지. 대부분 오후 7시쯤 엄마들이 아이를 데리고 퇴근하지만 야근이 있을 경우 추가보육을 해준다.
보육료는 국ㆍ공립 어린이집에 준해 연령별로 11만 2,000~21만 9,000원을 받는다.
야외학습이나 견학 명목의 잡부금이 없고 심야시간대 추가 보육료도 5,000원 선이다. 교사 1인당 맡는 아이들이 5.3명으로 질이 좋은 편이다.
이곳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출퇴근하면서 짧은 시간이나마 정을 나눈다.
같은 건물3층에 어린이집이 있지만 점심시간 외에 근무 시간에 아이를 보러 오는 엄마들은 없다.
2~3세 어린 아이들은 엄마만 보면 집에 가려 하기 때문이다. 업무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회사에서도 규제하는 편이다.
수용능력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여직원이 총 957명인 삼성 SDS는 기회균등을 위해 입소기간을 3년으로 제한했지만 퇴사하는 사람 없이는 결원이 생기지 않을 정도다.
최근 입소한 아이도 1년 넘게 기다렸다 타 지역으로 전근가는 사람 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울시청 공무원들을 위한 직장보육시설 ‘서울시어린이집’은 60여 명의 대기자가 줄을 서고 있다.
이 시설은 일반인에게도 정원(147명)의 40%를 개방하는데 300명 넘게 입소를 대기하고 있다.
현재 직장보육시설이 설치된 곳은 124개에 불과하다.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이라는 설치기준이 있지만 강제규정이 아니다.
민주노총김성희 여성부장은 “여성이 75% 이상인 보건의료노조 산하 150여 개사업장 중에서도 직장보육시설이 있는 곳은 13개에 불과하다. 미설치 사업장에 대한 처벌이 명문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베이비시터
두 살배기 아들을 둔 30대 초반의 전업주부 이정아씨는 요리학원에 다니면서 2~3시간 집을 비우게 돼 베이비시터를 불렀다.
지난해 입원한 시댁 어른의 병문안을 갈 때도 아이를 병원에 데려 갈 수 없어 베이비시터를 이용했다.
이씨는 친정 부모와 시부모 모두 지방에 살고 있어 잠시 집을 비울 때 마땅히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
베이비시터 업체를 이용하는 전업주부들이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 세상’의 경우 전업 주부가 전체 회원의 60%에 달한다. 직장여성들은 야근을 할 때 많이 이용한다.
경원대 보건소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는 김연숙(34)씨는 여섯 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낮 시간에는 집근처의 놀이방에 다니지만 김씨가 일주일에 2~3일 정도 밤 9시까지 근무할때는 베이비시터에게 맡긴다.
“놀이방이 밤 12시까지 문을 열지만 보통 오후 6시가넘으면 다들 집에 가기 때문에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해 한다. 그럴 때 대학생 언니가 놀이방에 와 아이를 집에 데려가 밥도 먹여주고 놀아주면 아이가좋아한다.”
베이비시터 업체는 이 같은 ‘틈새시장’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대학생들이 영어동화를 읽어주며 공부를 도와주거나 호주ㆍ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의 젊은이들이 6개월가량 집에 머물며 영어 공부도 가르치는 튜터링 등 보육보다는 학습에 가까운 서비스도 있다. 주말ㆍ휴일에 박물관이나 놀이공원, 극장 등에 아이와 동행하는 ‘소풍 탁아’, 장애아를 위한 ‘장애탁아’ 등의 프로그램도 있다.
대부분 회원제로 운영되며 5만~7만 원 정도의 입회비를 내고 이용 하루 전에전화나 인터넷으로 신청할 수 있다.
아이들세상(02-516-0065)이나 프리맘(02-462-7722), 놀이친구(02-3471-1212)등이 비교적 잘 알려진 베이비시터 파견업체.
업체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용료는 보통 두 시간 기본에 1만 2,000원, 한 시간이 추가될 때마다3,000원 가량을 받는다.
튜터링 등 교육 서비스는 조금 더 비싸다. 베이비시터를 한달 내내 쓴다면 비용이 100만 원이 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장기간 이용하기는 힘들다.
보통 2~3세의 어린 아이는 40~50대 주부들이, 그 이상의 어린이들은 대학생들이 시터로 나선다.
하지만 베이비시터 업체가 많이 생기면서 연회비만 챙기고 사라져버리는 곳도 있기 때문에 주변의 평판 등을 들어 믿을 만한 업체를 골라야 한다.
낯선 사람을 집안에 들이는 불안함도 감수해야 한다. 최근에는 집안에 디지털카메라를 장착해 엄마가 인터넷을 통해 베이비시터가 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자녀 관찰’ 시스템도 등장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