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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자 싫어 / 어설픈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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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자 싫어 / 어설픈 페미니스트

입력
2002.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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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째 직장에 다니고 있는 친구 L에게 들은 얘기다.L이 일하는 홍보 부서는 팀장인 C부장을 제외하면 모두 여자다. C부장은 페미니스트를 자처한다고 한다.

“팀장이 페미니스트라니 다행이구나, 여자 부하들이 좋아하겠네” 했더니 L은 펄쩍뛰었다.

“모르시는 말씀. 여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상사 중 하나야”라고 한다.

L과 그의 동료 여직원들이 C부장을 싫어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자에 대해 너무 아는 체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여직원을 대하는 매너가 무척 좋은 것 같지만 홍보전략 회의를 하든, 내부 회의를 하든 실은 전혀 여자의 심리나 취향을 모른다.

예를 들어 여성 홍보맨의 특성을 이용한다는 것이 ‘보호받을 존재’로서의 여성의 한계를 지어버리는 식이거나, 여성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하겠다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그것도 지극히 남성 위주의 시각으로 전략을 내놓는다.

그러면서 “여자들은 이렇잖아, 저렇잖아. 내가 이래봬도 페미니스트라구” 한다는 것이다. 충분히 이해가 갔다.

주위에서도 종종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들을 본다. 여성들이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경우가 드문 것과는 정반대다.

그러고 보면 두 성(性) 사이에서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는 조금 다른 뜻으로 쓰이고 있는 듯하다.

여성 페미니스트는 자기 주장이 강한 드센 여자를, 남성 페미니스트는 여자를 잘 이해하는 좋은 남자를 뜻하고 있으니 말이다.

여기서 페미니스트의 정의를 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남성이라면 여성의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내면과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습만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여성들이 인정할만한 페미니스트는 아니다.

그런 어설픈 남성 페미니스트는 차라리 반(反)페미니스트만 못하다. 여성에 대한 편견을 인정하는사람은 설득과 싸움이 가능하지만, 여성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사람은 손 쓸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김지영기자

koshaq@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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