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씨의 시집 ‘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문학과지성사 발행)에는 ‘風水(풍수)’라는 시가 실려있다.‘누구에게나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은 아니다.//고생이 그저/ 고생으로 끝날 때// 힘든 체험이 체험으로/ 담담히 끝날 때// 산세가 뻗지 못한 가슴/ 바람이 일고// 컴컴한 내장엔/ 물이 고인다.’
풍수라는 말의 본적은 동진(東晉) 사람 곽박(郭璞)이 쓴 ‘장경(葬經)’이라고 한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다)의 준말이다.
‘장경’은 글자 그대로 장사지내는 법에 관한 책이니, 풍수의 출발점은 음택풍수(陰宅風水)곧 묘지 풍수였다.
음택풍수의 밑받침은 조상의 묘를 잘 써야 자손들이 잘 된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풍수는 이내 살아있는 사람이 거주하는 집, 마을, 성곽 따위의 형국을 중시하는 양택풍수(陽宅風水)를 포괄하게 되었다.
풍수는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수입된 이래 한국인의 생활양식과 세계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공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논어’의 구절을 입에 달고 살던 조선조의 유자(儒者)들조차 막상 자기 조상의 묘를 쓰거나 살 집을 고를 때는 풍수에 기대는 경우가 많았다.
복거일씨의 시에서 풍수의 형국은 사람의 몸 바깥에 있지 않고 그 안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부침을 결정하는 원인이라기보다 잘 풀리지 않은 삶의 한 증상이나 결과일 뿐이다.
거기에는 운명의 타개와 조정이라는 풍수의 적극적 측면이 거세돼 있다. 형세가 몸 안에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증상일 뿐이라면 이장(移葬)도 염승(厭勝: 지세의 부족한 점을 보충하거나 변경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화자는 달관의 자세로 우주의 한 원리인 우연을 받아들인다. 그 우연 때문에 고진감래(苦盡甘來)는 더러 거짓이 된다.
그러나 새나가는 바람과 고인 물은 이 구겨진 삶의 앞에 있지 않고 뒤에 있다. 결국 ‘풍수’는 반(反)풍수의 시다.
풍수든 반풍수든, 그 마지막 두 행은 사무치게 슬프고 아름답다. ‘산세가 뻗지못한 가슴/ 바람이 일고// 컴컴한 내장엔/ 물이 고인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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