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이에게 숨겨둔 애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끔찍한 배신감에 숨이 멎을 것처럼 고통스럽고, 살의를 품을 정도로 저주스럽다. 그렇게 삶이 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어떻게 해야 할까.
2002년 이상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권지예(42)씨는 첫 창작집 ‘꿈꾸는 마리오네뜨’(창작과비평사 발행)에서 그 답을 찾는다.
불륜은 1990년대 이후 많은 여성작가들이 파고든 소재에서 비켜나지 않는 것이다.
그 익숙한 자리에 서서 권씨는 이렇게 답해 본다. “인간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자아를 찾아야겠다는 식의 발상 전환은 낡은 것이고,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은 너무 여성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한번쯤 인간으로서 이해와 예의를 갖추고 바라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한다.
작가는 체험에 충실하게 기대는 쪽이다.10년여 파리에서 유학한 그의 경험은 작품 속에 그대로 스며 있다.
‘정육점 여자’에서 무정자증 남편은 두번째 임신을 했다는 아내 앞에서 침묵한채, 프랑스에서 만난 연인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상자 속의 푸른 칼’에서 정부를 둔 남편에게 이혼당한 아내는 프랑스에서 차력사와 사랑에 빠진다.
‘고요한 나날’은 작가가 귀국한 뒤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의 체험이 바탕이 됐다.
기혼자와 연애했던 여자는 사고로 입원한 뒤, 죽은 남자가 아내와 이민을 가려 했다는 얘기를 뒤늦게 전해 듣는다.
불륜도 일상처럼 받아들여지는 끔찍한 진부함을 어떻게 덜어내야 할까. 작가는 표제작에서 한 가지 열쇠를 내민다.
그 열쇠는 구원의 문을 여는 것은 아니지만, 위로의 문에 달린 자물쇠에 잘 맞는다. 서울의 아내는 파리에서 유학하는 남편에게 정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만난 남자의 아이를 가진 것으로 여겨 죄의식에 시달려온 아내다.
치욕으로 울부짖고 팔목에 자해를 할 정도로 괴로워하다가 아내는 허무의 가장자리에 이르게 된다. “삶의 습관을, 궤도를 이탈하려면 어떤 치열한 광기나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외도 역시 삶의 습관과 궤도에 속한 것이 아닌가. 마리오네트(줄을 매달아 놀리는 서양의 인형)와 다르지 않게 살아간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깨달음 뒤의 마리오네트는 “주술에서 풀려나 스스로 첫 호흡을 시작한다.”
물론 여전히 줄에 매달려 있긴 하지만.
권씨는 이 소설집 발간 직전2002년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글쓰기에 재능이 뛰어난 동생이 있었다. 교내 백일장에 동생의 글을 베껴 냈는데 장원을 했다. 열 일곱 살 나이에 동생이 죽었다. 파리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동생의 영혼이 내 안으로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창작의 동기를 말하기도 했다.
“쫓기듯 쓰는 행위는 멀리 하고 싶다. 과작이라도 한 편 한 편 정성을 다해 쓰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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