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미국인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영어이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그는 학생들의 이름을 기억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학생들에게 미국이름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은 어떠냐고 했다.
그는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일본의 식민지로 있었던 시절 자행되던 일이 아니냐고 했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고 이후 많은 반성을 했다.
미국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이 미국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을 본다.
성업중인 미국계 헬스클럽의 한국 직원도 ‘지미’, ‘제니퍼’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을 들었다.
미국에 가서 아이를 낳고 미국 국적을 취득하는 프로그램이 고가에 팔린다고 한다. 서글픈 일이다. 반면 우리 영어교육 현장에서는 역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다.
국내 유수 대학 출신으로 외국에 서 영어교육을 전공,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고급 인력이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 당하고 있다.
이들은 시간 강사의 직위로 착취를 당하고 이름 모를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의 외국인에게 전임강사 자리를 내주고 있다.
최근 모 대학 2005년 발전계획안에는 영어회화 전담교수를 모두 외국인으로 대체하는 안이 있었다. 대학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외국인 교수 비율을 높이자는 것은 훌륭한 석학을 유치하자는 취지이지 학사출신의 외국인을 많이 채용하자는 뜻은 아니다.
현재 영어를 가르치는 많은 외국인 강사들은 영어를 모국어로 말한다는 것 뿐, 영어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심지어 한국계 미국인 교사에 대한 차별도 많다. 이들은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려서 이민을 가 영어를 미국인과 똑같이 구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모국인 한국에서도 '충분히 미국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 당하기 일쑤다.
언어적 제국주의란 언어는 원어민만 가르칠 수 있다고 믿게 유도함으로써 그들의 인력을 세계에 수출하고 교재를 팔고 문화와 가치체계를 퍼트린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이러한 언어적 제국주의의 손아귀에 잡혀 있는 것 아닌가. 우리아이들이 혀 수술까지 받아가며 원어민 발음을 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의사소통 능력이다.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 즉, 학문적 업적의 발표, 사업, 외교, 친선 등의 목적을 영어라는 국제어를 통해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목표다.
자신의 의사를 편하게 구사하고 이해시킬 수 있다면 ‘컴퓨터’든 ‘컴퓨러’든 상관없다. 영어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이원구 서강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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